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물가苦' 쌍둥이 엄마의 2009년 2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물가苦' 쌍둥이 엄마의 2009년 2월

입력
2009.03.05 00:04
0 0

백정아씨는 요즘 남편에게 "그래도 개인사업자에 비하면 봉급생활자는 나은 편 아니냐"고 위로한다. 불경기에 직장 스트레스로 허리병이 도진 남편이 안쓰러워서다. 그러나 속은 시커멓게 타고 있다. 지난달은 연말정산 환급금이 월급 대비 70%가 더 나왔다. 그러나 은행대출금에 결산해보니 마이너스통장은 –900만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오른 전세금과 자동차 구입비용을 대기 위해 은행과 보험사에서 대출받은 돈이 얼추 3,000만원, 급전이 필요해서 동생과 함께 붇고 있는 곗돈을 끌어 쓴 것 등을 합치면 가계부채는 4,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백씨는 "정말 안 먹고 안 쓰는 데도 물가는 겁나게 오르고, 빚은 계속 늘고, 외벌이 해서 먹고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싶지만 그렇다고 애 딸린 여자가 할만한 일거리도 드물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백씨는 살림솜씨가 야물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집에는 그 흔한 화장비누 하나 없다. 빠듯한 살림에 비누 사서 쓸 생각은 아예 버렸다. 대신 지난해 부업거리 삼아 배운 비누공예로 직접 비누와 샴푸 등을 만들어 쓴다. 화장품도 없다. 역시 직접 만들어 쓴다. 수도나 도시가스 요금 고지서, 휴대전화 사용요금 통지서도 없다. 수도비는 직접 자가검진해서 내면 800원을 할인해주고 도시가스나 통신비는 인터넷 납부를 통해 150원에서 200원씩을 할인받는다. 가계부에는 자투리 돈을 넣어둔 통장에서 나온 한달 32원의 이자까지 수입항목에 꼼꼼히 기록해, 보는 사람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그래도 생활은 갈수록 팍팍하다. 올 들어서는 애들 티셔츠 한장도 사주지 않았고 아이들 교육을 생각해서 전시회나 박물관을 다니던 것도 무료 프로그램이 아닌 한 가지 않는다. 지난 설날에는 오랜만에 뵌 시댁 어른들께도 염치불구 용돈도 드리지 못했다. 식료품값이 치솟으면서 먹는 것부터 줄여 냉장고에는 김치종지를 제외하곤 눈에 걸리는 게 거의 없다. 오죽하면 속 깊은 남편이 "반찬 좀 해먹자" 할 정도다. 악착 같은 백씨도 얼마전 큰 맘 먹고 구입한 딸기 한 팩을 정신없이 먹어대는 아이들을 지켜볼 때 눈가가 뿌예졌다.

"아이들이 과일을 좋아해서 작년까지만 해도 한 상자씩 들여놓곤 했지만 올 들어서는 과일 사기도 겁난다"는 백씨는 "TV에서 딸기농장 체험 프로그램을 본 아이들이 벌써부터 '딸기 먹고싶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거 하나 사기가 이렇게 빠듯한가 싶어서 서글프더라"고 했다.

요즘 백씨는 집에서 할만한 부업거리를 찾고 있다. 간혹 문화센터나 주부회원으로 가입돼있는 기업체 커뮤니티에서 비누공예 강의를 맡아 20만원 남짓 부수입을 챙기긴 하지만 고정적인 벌이가 절실하다. 취직도 생각해봤지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당장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11시반이면 집에 오는 데 아이를 맡아줄 사람도 없고 유치원 종일반을 이용하려면 일 평균 3만원씩을 더 내야 하는데다 직장주부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여성 일자리 갖기 캠페인에 기대를 걸면서도 회의적인 이유도 여기 있다.

백씨는 "정부나 행정당국이 일자리 창출 말은 떠들어대도 여자가 일하려면 육아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데 그건 쏙 빠져있으니 정책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우리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경기이니 물가 잡는 데는 한계가 있을 거고, 당장 봉투붙이기나 옷 티클 제거하기같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이라도 찾아서 애들 딸기라도 실컷 먹여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