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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2부 진화론과 21세기 <1> 문화는 진화의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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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2부 진화론과 21세기 <1> 문화는 진화의 산물인가

입력
2009.03.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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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심리학자 윈드롭 켈로그와 그의 아내는 기상천외한 실험을 감행했다. 태어난 지 열 달 된 아들 도널드를 그보다 두 달 반 어린 침팬지 암컷인 구아와 함께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철저한 환경론자였던 켈로그는 침팬지를 가정에서 인간 아기와 똑같이 양육하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리라 기대했다. 원래 침팬지가 흉내 잘 내기로 유명한 동물 아닌가.

결과는 그러나 뜻밖이었다. 구아는 머리털을 빗는 등 몇몇 인간적인 특성을 학습하긴 했다. 하지만 정작 상대방을 낱낱이 따라한 녀석은 도널드였다. 도널드는 주먹을 땅에 댄 채로 걷고, 아버지 구두를 물어뜯고, 벽에다 이를 문질러댔다.

심지어 침팬지처럼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실험은 아홉달 만에 중단됐고, 구아는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흉내내기의 챔피언은 침팬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 인간의 마음은 백지가 아니다

켈로그의 실험은 문화를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동안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생물학은 몰라도 된다고 믿었다.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텅 빈 백지 상태이고, 그 하얀 화폭에 어떠한 그림이 채워질지는 문화나 사회화 같은 외부 환경이 잡은 붓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행동은 마치 요술찰흙처럼 그가 태어나서 자란 문화에 의해 무한정 다듬어지고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바람 피우는 애인에 대한 질투, 유괴된 자식을 찾아 헤매는 부모애 같은 원초적 감정조차 인간 본성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인간 행동은 문화에 달려있기에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현장에서 남편이 아내를 쿨하게 끌어안는 사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켈로그의 실험은 침팬지와 인간의 행동 차이가 다른 환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침팬지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은 다르다. 침팬지가 인간과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다 한들 결코 인간처럼 말하고 사고할 수 없다.

또한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텅 빈 백지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만년 전 수렵채집생활을 했던 우리의 조상이 무사히 살아남아 번식하게끔 해주었던 행동지침들로 빼곡히 채워진 두툼한 가이드북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무이한 대명제, 예컨대 '보상은 추구하고 처벌을 피하라' 혹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라' 같은 원리는 아예 없다고 본다. 일반원리 하나로 세상을 헤쳐나가기에 우리 조상들의 삶은 너무나 다채롭고 험했다.

곰팡이 핀 음식을 회피하기,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기, 호랑이나 뱀 같은 위험한 동물 피하기, 건강하고 섹시한 이성을 고르기, 사기꾼에게 넘어가지 않기, 말썽 피우는 자식 혼내주기 등등 세상은 넓고 풀어야 할 문제는 많았다. 즉 인간의 마음은 과거 환경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자연선택된 수많은 해결책들의 묶음이다.

사람이 자연선택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마음을 지닌다는 진화적 시각을 좇으면 자연히 다양한 문화의 밑에 깔린 보편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느라 바쁜 동료들과는 반대로 인류학자 도널드 브라운은 민족지들을 샅샅이 분석해 모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수백 가지 특질들을 찾아냈다.

낭만적 사랑, 위생관념, 망자에 대한 애도, 음악, 언어, 근친상간 회피, 소문, 성적 질투, 단 것에 대한 선호, 위계질서, 친족에 대한 호칭 등이다. 이러한 보편 속성들이 타고난 인간 본성을 알 수 있는 창이다.

■ '보편적 심리'가 문화로 발현

이쯤 되면 "어쨌든 문화는 진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사실상 사회과학자들은 인간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양대 요인인 생물학과 문화 중 생물학에 너무 적은 영토를 허용한 감이 없지 않다.

'인간 행동은 생물학이 아니라 문화로 설명된다'는 주장은 대개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관찰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편은 자기 아내가 낳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

그러나 약 10%의 사회에서는 남편이 아내가 낳은 자식 대신 자기 누이가 낳은 자식, 즉 조카에게 재산을 물려준다. 이러한 상속 패턴의 차이는 곧 문화 때문이라는 것이 사회과학적 설명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의 생각은 다르다. 진정한 인과관계를 알려면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낳은 보편적인 심리기제가 무엇이며 왜 그러한 차이를 낳았는가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진화론이 이러한 집단 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 투비와 커스미디즈는 보편적인 심리기제가 다른 환경에 반응해 다양하게 나타난 결과물을 '유발된 문화(evoked culture)'라고 했다.

집단마다 상속 패턴에 차이가 나는 것은 '부성 불확실성(paternity uncertainty)'에 민감하게 진화한 남성의 심리에서 유발된 문화이다. 엄마는 항상 자기 자식을 확신할 수 있지만, 아빠는 이 아이가 정말 내 자식인지 옆집 우유배달부의 자식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부성 불확실성이 높으면 자기 자식보다 누나나 여동생이 낳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물론 아빠가 친자식과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50%인 반면 조카와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25%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성 불확실성이 극도로 심한 사회에서는 차라리 25%의 확률을 믿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70개의 사회를 조사한 결과 이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모든 남성이 부성 불확실성에 민감한 심리기제를 갖지만, 혼외 정사가 빈번하여 부성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사회의 남성들만 재산을 누이의 자식에게 물려준다.

유발된 문화의 또 다른 예도 있다. 결혼 상대자의 신체적 매력을 결혼조건으로 얼마나 중시하는가 하는 정도도 문화권마다 다르다. 갱지 스테드는 전 세계를 29개 문화권으로 나눠 사람들이 배우자의 외모를 얼마나 따지는지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이를 각 문화권에 전염성 병원균이 얼마나 흔한가 하는 정도와 비교했다.

병원균의 분포 정도를 비교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것이 생물의 생존과 번식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진화생물학자인 윌리엄 해밀턴은 수컷 공작새가 화려한 꼬리를 만들어 암컷을 유혹하는 것도 병균과 기생충이 없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과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테드의 연구 결과 사람들이 배우자의 외모를 더 까다롭게 보는 사회는 전염병이 많은 문화권이었다. 전염성 병원균에 감염되면 얼굴의 좌우 대칭이 완벽하지 않거나 피부가 거칠어지는 등 신체적인 매력이 떨어진다. 결국 감염의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는 보다 많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건강한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외모를 더 까다롭게 따지는 것이다.

■ 문화의 전파도 진화론 따른다

그래도 여전히 문화의 일부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녀시대의 "지지지지 베이베 베이베"라는 곡조, 가수 손담비의 의자 댄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F4는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이의 마음으로 마치 생물처럼 자유로이 넘나들고 전파된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 전달의 단위를 '모방자(meme)'라고 제안했듯이,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진화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문화의 생성, 전파, 소멸조차 수백만년 동안 진화된 인간의 심리기제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의 두뇌의 용량은 제한돼 있고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히 어떤 모방자에 더 관심을 쏟고 더 오래 기억하고 더 잘 전파하도록 하는 심리기제를 진화시켰다.

예컨대 어느 제과 회사에서 2009년 신상품 팝콘 3종을 출시했다고 하자. 한 팝콘은 달콤한 설탕을, 다른 팝콘은 고소한 깨소금을, 마지막 팝콘은 청양고추와 생강을 쳤다.

어느 팝콘이 안 팔릴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설탕팝콘과 깨소금팝콘은 단 맛과 짭잘한 맛을 선호하게끔 설계된 우리 미각과 잘 맞아떨어져 쉽게 흥미를 끌고, 오래 기억되고, 널리 전파된다.

반면 생강팝콘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기제에 부합하지 못하므로 바로 퇴출될 것이다. "살라카둘라 메치카불라 비비비바비디부"가 '되고송'("생각대로 하면 되고")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요약해서, 문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대척점에 있지 않다. 집단 내 동일성과 집단간 차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문화는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다. 이 결론은 보편 문화, 유발된 문화, 전파된 문화 모두에 적용된다.

지난 세기에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진화의 관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다윈 혁명이 도래한 오늘날, 진화의 관점을 통하지 않고서는 문화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전중환ㆍ경희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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