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점치기 힘든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가장 심간 편한 나라는 북한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물망 밖에 있으니 당연히 미국 발 경제위기에도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힘들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판에 인공위성인지, 장거리 탄도미사일인지를 발사하겠다고 여유를 부리는 것도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되지 않아서 누리는 '자유'의 덕일 수 있겠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요즘 공장과 기업소들이 2월 생산계획을 초과 달성했다고 연일 선전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과는 바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생산이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금융위기서 한 발 비켜선 북한
체제 전환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옛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상황은 북한에 '우리식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더욱 각인시킬 가능성이 있다. 서유럽의 자본 유입에 힘 입어 고속성장을 구가하며 부국의 꿈을 키우던 이 나라들은 졸지에 국가부도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전락했다.
이런 사태를 북한은 사회주의를 배신한 나라들의 말로라며 내심 고소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주의 개혁개방의 성공 사례인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 시련도 단기적으로는 김정일 체제의 폐쇄주의 유지에 유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많다. 개혁개방에 대한 대내외적 압력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올해 벽두부터 집단주의와 자력갱생을 통한 사회주의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가 북한 지도부의 대내외 정세판단과 정책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1950년대 말 대대적인 군중 동원으로 큰 경제적 성과를 올렸던 천리마운동과 같은 혁명적 대고조를 기치로 내건 것은 자력갱생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 강행도 이런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국 등 주변국의 강력한 경고와 우려에도 미사일 발사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은 대외용 못지않게 대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대대적인 군중동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외 긴장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3기 체제 출범과 후계구도 가시화를 염두에 두고 군사 강성대국의 상징으로서 미사일 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체제 유지에 대미 적대의식 고취는 중요한 축이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북한의 위기감은 외부세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북한은 이 위기감을 과도하게 내면화해서 체제 유지 원리로 삼아왔다. 미국과 협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노력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 위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위협은 체제 유지에 꼭 필요한 요소다. 미국은 북한에 협상의 대상인 동시에 적대의 대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미국에 이중으로 중독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지나치게 과소비하는 중독이다.
북 미사일은 긴장유지 카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로 대미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대미 적대의식 없이 체제를 유지할 준비가 아직 안됐다는 의미도 된다. 핵 카드는 북한에 비교적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도 포함된 6자회담 틀에 묶여 있어 이를 통해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핵 이후를 미사일로 대비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에 전략적으로 현실적인 위협이 되긴 어렵다. 전략무기 게임에서 핵심은 상대방의 1차 공격 후 보복이 가능한 2차 타격능력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벌였던 이런 게임의 능력이 북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미사일 카드는 다분히 자기만족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미사일 소동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다.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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