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삼국지> 의 하일라이트는 적벽대전이다. 조조에게 쫓겨 위기에 몰린 유비는 손권과 연합전선을 결성, 적벽에 진을 친 조조의 대함대를 화공(火攻)으로 격파한다. 손권이 도망치는 조조를 쫓는 사이 유비는 슬그머니 뒤로 돌아가 형주를 차지한다. 뒤늦게 유비에게 이용당한 것을 안 손권은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미 늦은 일. 형주에 둥지를 튼 유비는 그때부터 세력을 키워 조조, 손권과 함께 삼국지세를 형성한다. 삼국지>
최근 삼국지의 적벽대전 같은 일이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일어났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통신업계 최대 관심사인 KT-KTF 합병을 놓고 SK텔레콤이 KTF와 혈전을 벌이는 사이, SK텔레콤의 우군인 줄 알았던 LG텔레콤이 SK텔레콤과 KTF의 가입자들을 번호이동을 통해 슬그머니 끌어가 버렸다.
이는 2일 발표된 이통 3사의 2월 가입자 실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LG텔레콤이 타사에서 빼앗아온 번호이동 가입자는 총 2만619명으로, 단연 1위다. SK텔레콤에서 464명, KTF에서 2만155명을 데려왔다. 2월에 늘어난 LG텔레콤 가입자가 5만3,568명인 점을 감안하면 약 40%를 타사에서 번호이동으로 데려온 것이다. 번호이동은 제로섬 게임이어서 늘어난 업체가 있으면 반드시 줄어든 업체도 있다.
KT-KTF 합병 공세에 총력을 쏟았던 SK텔레콤은 뒤늦게 공짜폰으로 가입자 이탈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최근 방어전략으로 구사한 공짜폰은 LG텔레콤 측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서를 제출하는 바람에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
SK텔레콤은 LG텔레콤에게 464명의 자사 가입자를 내주고 만만한 KTF에서 1,977명을 빼앗아 번호이동 실적을 겨우 1,513명 증가로 마감할 수 있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난달 KT 합병을 막기 위해 온 신경을 쏟느라 LG텔레콤이 마케팅 공세로 가입자를 끌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속상해 했다. LG텔레콤이 우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안 셈이다.
KTF는 눈뜨고 허무하게 당했다. KT 합병이 걸려있는 만큼, 주가 관리와 향후 합병 비용 준비 등을 위해 돈을 쓸 수 없는 형편이다. KTF는 LG텔레콤 측에 무려 2만155명의 가입자를 내주고, SK텔레콤에게도 협공을 당해 1,977명을 빼앗겼다. 결국 KTF의 지난달 번호이동 실적은 2만2,132명이 빠져나가 마이너스로 마감했다.
결국 시장의 특수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한 LG텔레콤의 승리였다. LG텔레콤은 적벽대전에 나선 유비처럼 SK텔레콤과 KTF의 혈전을 틈타 실리를 챙겼고, SK텔레콤은 손권처럼 작은 이득에 그쳤으며, KTF는 제대로 두들겨 맞은 조조가 됐다.
문제는 향후 시장이다. 업계에선 올해 번호이동 전쟁이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초부터 가입자 빼앗기가 치열한 만큼, 빼앗긴 업체는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들여 가입자를 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KTF 관계자는 "번호이동 시장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방어하지 못하면 빼앗길 수 밖에 없어 싸움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3월부터는 순순히 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KTF도 KT와의 합병 이후를 벼르고 있는 만큼 향후 이동통신 시장은 업체들이 돈을 쏟아 붓는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 방통위, 신규가입자 번호이동 제한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과열을 막기위해 신규 고객이 가입 후 3개월간 번호이동을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번호이동운영지침을 마련,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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