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리히드
"누가 여기를 다스리나요?"
나는 물었네
사람들은 대답했네.
"당연히 국민이 다스리지요."
나는 말했네.
"당연히 국민이 다스리지요.
하지만 누가
진짜 이곳을 다스리나요?"
에리히 프리히드는 1921년에 비엔나에서 태어나 1988년 독일에서 죽은 오스트리아 시인이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런던으로 유배를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BBC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나치 정권을 겪어낸 유대인 출신의 독일어권 시인들은 사실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들을 학살한 언어가 독일어였고 그들의 시 역시, 독일어로 쓰여졌기 때문이었다. 독일인들은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사실, 그들이 죽인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인 출신의 독일인이었으며 독일어권 시민이었다.
그런 이중고를 가진 유대인 출신의 독일어권 시인이었던 에리히 프리히드는 그의 언어로 전쟁이 끝나고도 지속되고 있는 이 세계의 부당함을 아름답고도 짧은 언어로 그려내었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가차없이 행해졌다. 가히 정치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시편 가운데 위에 소개한 아주 짧은 시는 그의 명성에 값한다.
베를린에 있는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는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독일 국민을 위하여'. 국회의사당을 지나면서 청와대 앞을 지나면서, 혹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중심부를 향하여 물어보라, 정말, 국민을 위하여인지. 진짜 누가 이곳을 다스리는지.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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