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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귀농' 새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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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귀농' 새 물결

입력
2009.03.0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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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시 충남 천안시 성환읍 천안연암대의 유리온실 안. 밖에는 때아닌 눈이 내리고 있지만 온실 안은 열기로 후끈했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교수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운 채 싱싱하게 자라는 친환경 채소를 살펴보는 교육생들의 학업 열기가 뜨거웠다.

'우리는 지금 농촌으로 간다'라고 적힌 녹색 조끼를 입은 이들은 이 대학 귀농지원센터의 도시민농업창업교육과정 제5기생 25명이다. 이날 입교해 4개월의 강도 높은 합숙교육에 들어간 이들은 5.2대 1의 경쟁률은 뚫었다.

평균 자산은 3억~5억원, 학력도 고졸이 3명이고 나머지는 대학과 대학원 졸업자들이다. 교사, 연구원, 은행 지점장, 기업체 임원, 공무원 출신 등 경력도 다양하다.

경제위기로 귀농(歸農)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엘리트 귀농'이 새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다.

귀농 하면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 도시생활 부적응자 등이 고개를 떨구고 낙향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젊고, 고학력에, 자금도 든든하고, 사전교육을 충분히 받은 뒤 농촌의 블루오션을 찾아 떠나는 '창업형 귀농'이 늘고 있다.

경영마인드를 갖춘 엘리트 귀농인들이 피폐한 농촌에 새 희망을 일굴 수 있다는 기대도 확산되고 있다.

■ '창업형 귀농'으로 승부한다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농업에서 경제적 성공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광고회사 간부였던 박성용(39ㆍ경기 부천시)씨는 지난달 사표를 던지고 귀농지원센터에 왔다.

박씨는 "중학교 1학년인 딸의 교육과 문화혜택 등을 고려해 제주도를 귀농지로 생각하고 있고, 작목은 한라봉 블루베리 등과 더불어 신작물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일본의 선진농업 실태를 연구해 귀농에 적용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하다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귀농을 결정한 김기황(46ㆍ경기 용인시)씨도 "농업에 틈새시장이 많음을 발견했다. 막연한 귀농이 아니라 창업농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고향 땅 4,000여평을 임대했으며, 600평 정도씩 나눠 7, 8가지의 잡곡을 재배한 뒤 혼합곡을 1만원 단위로 소포장해 판매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농촌 출신인 한 교육생은 "고향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업성"이라며 "교육기간 중 한 달간 현장실습과 농촌투어를 마친 뒤 먼저 작목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귀농지를 고를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지원에 민간 교육도 활발

농림수산식품부가 1인당 수백만원의 교육비를 전액 지원하는 이 과정은 2006년부터 연암대를 비롯해 한국농업대학, 여주농업경영대학 등에 개설됐다. 갈수록 지원자가 늘어나 45세까지였던 나이 제한을 올해 49세로 높이고, 연 1회 교육과정을 지난해부터 2회로 늘렸다.

서류전형과 면접으로 선발하는데, 농지구입자금 보유 여부를 가장 중요시하고 영농의지, 관련교육 이수실적 등을 평가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젊음과 자본, 지적능력, 경영마인드 등을 갖춘 이들이어서 성공확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간단체의 귀농교육도 활발하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생태귀농학교를 비롯해 인드라망귀농학교, 실상사귀농학교 등에서 실시하는 유기농법과 친환경에너지 등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교육에 도시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독불장군, 조급함은 금물"

철도청 공무원 출신의 3년차 귀농인 송찬호(42)씨는 성공적인 정착 사례로 꼽힌다. 2007년 채소영농교육을 받은 뒤 충남 논산에서 비닐하우스에 딸기와 상추를 재배해 지난해의 경우 1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개인상표를 붙여 팔만큼 우수한 품질도 인정 받았다.

송씨는 "자재비 인건비 등을 빼면 순익은 많지 않지만 땅은 내가 한만큼 돌려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 귀농인들에게 "영농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민들과의 화합"이라며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절대 농촌에 뿌리내릴 수 없다"고 당부했다.

40대 초반에 귀농해 전남 여수시 인근에서 친환경 농업으로 배추 등을 재배하는 이종균(53)씨는 직영매장을 운영하며 지난해 7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선배 귀농인에게 철저히 배운 뒤 독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2006년 전북 장수군으로 귀농한 김모(40)씨의 지난해 수입은 1,000만원에도 못 미쳤다. 귀농학교와 농업인턴 등을 거쳤지만, 손대는 작목마다 별 재미를 못 봤다. 때문에 아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녀 둘을 돌본다.

그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점차 자리잡고 있다. 올해는 2,000만원, 내년에는 3,000만원 순수입을 달성한 뒤 가족들을 불러와 합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자치단체도 귀농인 유치 경쟁

농어촌 자치단체들도 성공 잠재력이 큰 귀농인을 유치하려고 경쟁하고 있다. 귀농지원조례를 만든 곳만 23곳에 달한다. 경북도는 지난달 25일 연리 1.5~2%의 저리 자금을 귀농자에게 최대 2억원까지 차등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경기도는 올해 합숙 귀농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밖에 정착자금 및 시설자금 지원, 영농법 무료교육, 원주민의 멘토링 등을 실시하는 시ㆍ군들이 많다. 2012년 입주 예정인 전북 고창의 귀농인 마을은 100가구 분양에 556세대가 신청했다.

채상헌 천안연암대 귀농지원센터장은 "도시의 우수한 젊은 피가 농촌에 수혈돼 우리 농업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사회적 이민'인 귀농의 확산을 위해 사회 전반에서 물질적, 정신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천안=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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