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ㆍ달러 환율의 급변동세에는 투기세력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달러가 쌀 때 사서 비쌀 때 되파는 환차익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환율 상승을 부추긴다는 얘기다. 외환당국 역시 주기적으로 "환투기 세력의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낼 정도지만 이들의 행보가 워낙 베일에 가려있는터라 의구심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정보가 극히 제한적인 외환시장 특성상, 누구도 정확한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환투기 움직임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증은 강하다. 특히, 뉴욕ㆍ싱가포르 등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달러를 사고파는 역외세력이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NDF 환율이 오르면 서울 외환시장 환율이 따라오르는 현상이 최근 자주 반복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최근 들어 외국인을 중심으로 외환시장 마감 직전에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올리거나 밤사이 NDF시장에서 달러 매수세가 강해지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며 "이는 상당부분 투기적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경제조사실장도 "최근 국내외 외환거래량이 모두 실수요만은 아닐 것"이라며 "특히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는 것은 거래내역을 정확히 알 수 없는 NDF시장에서의 헤지펀드 등 환투기세력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기업은행 김성순 차장은 "환율이 지난해 고점(1,525원)을 돌파하면서 일부 가수요가 생기기는 했지만 외환위기 당시에도 환율이 1,500원선 위에서 머물렀던 적은 2달 뿐일 정도로 비정상적인 수준"이라며 "투기세력도 이런 수준에서는 과감하게 베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투기 목적이라기 보다는 역외세력조차도 요즘은 실수요가 많아 보인다는 얘기다.
사실 환율의 균형이 깨지면 누구나 잠재적인 환투기 세력이 될 수 있다. 환율 상승이 거의 확실하다고 여기는 순간, 달러를 들고 있는 수출업체는 매도를 미루고 달러가 필요한 수입업체는 서둘러 달러를 사두려 한다. 개인 역시 1,400원일때 달러를 사서 1,600원에 판다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 모두가 달러 공급은 줄이고 수요만 늘리는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현대증권 이상재 부장은 "시장의 기대가 한쪽으로 쏠려 있을 때는 모두가 투기세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날 당국의 개입은 환율 상승에 베팅했던 모두에게 뼈아픈 일격이었다. 상승에 배팅해 1,570원대에 달러를 사들인 역내외 세력들은 이날 환율이 1,550원대까지 떨어져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달러를 팔지 못해 발을 굴렀다고 시장관계자는 전했다.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이들이 환율 레벨을 올려 환차손을 보상받으려 한다면 환율은 또 한번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외환거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통제는 거의 안 되면서도 국내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역외시장이 존재하고, 일 거래량이 국내 40억~50억달러, 역외 5억~7억달러에 불과한 거래 규모는 해외 거대 자본에게는 늘 건드려 볼만한 사이즈라는 지적이다. 김윤기 실장은 "외환시장 규모와 함께 NDF시장에 대한 당국의 통제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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