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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서글픈 레밍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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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서글픈 레밍 국회

입력
2009.03.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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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회를 보면, 불경한 생각이지만 레밍(lemming)이 떠오른다.

레밍은 핀란드나 북부 노르웨이에 서식하는 들쥐의 일종이다.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다 알다시피 집단자살 성향 때문이다. 폭발적인 증식력을 가진 레밍은 개체수가 너무 증가하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나게 된다. 선두 쥐가 방향을 잘못 잡아 바닷가 낭떠러지에 이르러 떨어지게 되면 뒤따르던 쥐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희한한 집단자살은 맹목적인 집단주의를 의미하는 레밍 현상으로 불린다.

서글프게도 우리 국회도 레밍 같다. "감히 어디다 대고"라고 분통을 터뜨릴지 모르지만, 국회에서 밀고 밀치는 의원들을 보면 레밍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향해 몰려가는 대열에서 이탈할 생각조차 못하는 레밍처럼, 한국 국회의원들은 민심이나 지역구 여론, 자기 가치관보다는 당론에 더 충실한 집단주의 신봉자들로 보인다.

정말 서글픈 일은 탁월한 전문가이자 존경받는 인품의 소유자들조차 국회만 들어가면 집단의 졸개로 전락하고 만다는 점이다. 물론 권력자의 철학과 자기 생각이 일치해 당론을 신념처럼 받아들이는 의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석에서 당론이나 지도부의 노선을 비판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지난 주말 한 결혼식에서 만난 야당 중진의원이 그랬다. 그는 미디어법 저지에 전력을 다하는 지도부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 주겠다고 하면 되나. 우리가 MBC만 붙들고 있으면 정권이 오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얼마 전 만난 여당 중진의원도 그랬다.

그는 미디어법의 일자리 창출론에 대해 "감세만 이루어지면 기업투자가 활성화될 거라고 얼마나 떠들었나. 그런데 쥐뿔도 투자를 안 하니 누가 우리를 믿겠냐"고 자탄을 했다. "정권 초 특보들을 언론사 사장이나 언론단체장으로 줄줄이 임명해놓고 미디어법은 방송장악과 무관하다고 한들 누가 믿겠냐"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국회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는 보도를 보지 못했다. 무엇이 그들의 입을 막고 발을 묶는 것일까. 다음 공천이나 자리 때문일까, 아니면 대세를 거스를 때 돌아올 압박과 소외 때문일까. 하긴 국회의장에게까지 직권상정 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식의 공갈과 협박이 난무하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의원들에게 헌법은 헌법기관의 지위를 주고 있다. 헌법이 국회의원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고 행정부 견제권능과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물론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는 통화 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대통령은 주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때 여야 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이 그랬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도부에 지침만 내리면 되니까.

하긴 국회가 남을 탓할 것도 없다. 의원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 검찰 수사를 끌어들이는 마당이니 말이다. 그토록 힘든 선거를 거친 헌법기관들이 젊은 검사들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맡기는 꼴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제 원칙으로 돌아가보자. 헌법기관으로서 자존과 권한, 의무를 복원시켜 보자는 것이다. 권력자나 지도부 눈치를 보지말자. 오로지 국민이나 지역구민의 뜻, 나라의 장래 그리고 자기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해보자. 공감대 이상의 당론도 허용하지 말자. 그러면 바다로 뛰어드는 레밍 같은 집단주의의 서글픈 자화상은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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