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에 의한 검사실 방화사건과 생수통 독극물 발견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범인으로 지목된 김모(43) 경사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을 극히 꺼리는 눈치여서 의문이 커지고 있다.
■ 진짜 방화범 맞나
전주지검은 지난달 24일 김 경사가 자신에 대한 수사에 불만을 품고 담당 H검사의 방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하면서 현장에서 발견된 김 경사의 라이터를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다. 또 검찰 청사 뒷편 야산에서 김 경사의 장갑과 복면이 발견됐다고 했다.
하지만 김 경사는 "라이터는 그 이틀 전에 검사실에 조사 받으러 갔다가 놓고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갑과 복면도 방화의 직접 증거라고 하긴 어렵다. 15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가 라이터와 복면, 장갑 등 증거물들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는 것이 얼른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이 난 15일 밤과 16일 새벽 김 경사가 운영하는 김밥집 폐쇄회로TV가 모두 지워져 있다는 것도 검찰이 김 경사를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다. 김 경사가 범행 후 가게로 돌아와 자신의 알리바이(부재증명)를 조작하기 위해 일부러 지운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김밥집 종업원 2명은 "김 경사가 15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영업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었다"며 "배달을 위해 가게를 벗어난 경우도 있지만 10분을 넘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불이 난 15일 밤 김 경사는 가게에 있었고, 가게에서 전주지검까지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범행을 저지를 시간이 없었다는 설명인 셈이다.
■ 김 경사 왜 수사받았나
김 경사는 전북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근무하던 2007년 9월 범죄 첩보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지난해 9월 3일 구속 기소됐다가 다음달 6일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2007년 12월 수사에 착수, 김 경사가 조직폭력배로 분류된 최모씨 등 2명의 단순 사기사건을 갈취사건으로 조작해 검찰에 송치했다는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로 구속 기소했다.
당시 경찰에선 가벼운 사안인데도 검찰이 '경찰 길들이기' 차원에서 김 경사를 구속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김 경사는 동료 경찰관에게 "사기편취사건을 갈취사건으로 꾸몄다는 것이 기소 내용인데, 그렇게 적용할 경우 일선 수사 경찰관 대부분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억울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독극물 생수통과 연관성
방화 사건에 앞서 이 달 초 전주지검 3층 검사실 생수통에서 제초제 성분이 검출된 사건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애초 검사실 직원은 생수통 물이 파란색을 띠고 이상한 냄새가 나자 단순히 생수 오염이라고 판단해 생수통만 교체했다.
하지만 검찰은 15일 방화 사건이 발생하자 뒤늦게 사건의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소에 분석을 의뢰해 제초제 성분이 들어있었음을 확인했다.
문제의 생수통이 있었던 곳이 바로 H검사가 직전에 쓰던 방이다. 하지만 전후 사정 상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김 경사가 이처럼 무모한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 쉬쉬하는 검찰
검찰은 불이 난 뒤에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했다. 화재 사실을 안 지난달 16일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고, '누전으로 인한 화재'라며 일반인은 물론 기자들의 출입도 통제했다. 또 검사실 화재 현장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소방서에도 경위서를 요구했다.
검찰은 기자들에게 '공범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엠바고(보도시점 유예)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직 수사 중이어서 기본적인 사실 외에는 알려줄 수 없다"며 사건 설명을 극도로 제한했다. 생수통 독극물 검출 사실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범행을 저지르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김 경사를 베테랑 형사로 생각하지 말고 일반 용의자와 같이 생각하면 의문점들을 이해할 수 있다"며 "여러 증거로 미뤄 김 경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일 확률은 0%"라고 자신했다.
전주=최수학 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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