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을 걸은 하루였다. 직권상정에 의한 강행처리가 예고된 시한을 불과 20여분 앞두고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질 정도로 협상 과정은 아슬아슬했다. "국회 열차가 파국의 절벽 앞에서 가까스로 멈춰 섰다"는 한 의원의 넋두리처럼, 협상은 대표 간 공식회담만 7차례가이뤄진 곡절과 반전 끝에 겨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2일 새벽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새벽 1시30분 김형오 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ㆍ정책위의장 회담이 끝난 뒤 한나라당이 발끈했다. 시기를 못박지 않은 김 의장의 중재안이 민주당안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벽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중재안은 말도 안된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이 때만해도 민주당은 김 의장의 중재안에 힘입어 비교적 느긋했다.
그러나 기류가 오전 들어 변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는 김 의장을 만나 직권상정을 거듭 촉구했고, 이어 박 대표가 오전 10시로 예정된 대표회담을 무산시켰다. 박근혜 전 대표도 오전 11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로텐더홀 농성장을 방문, 야당의 양보를 촉구했다.
결국 오후 1시 40분. 허용범 국회 대변인이 "김 의장이 방송법 등 15개 쟁점법안의 심사기간을 오후 3시로 지정했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급반전 했다.
이제 민주당이 다급해졌다. 민주당은 김 의장의 중재를 믿고 보좌진과 당직자들을 이미 국회 본청에서 철수시킨 터라 직권상정 시 본회의장 진입을 막을 수 있는 인력도 충분하지 못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의장의 직권상정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관 200여명은 오후 2시께부터 결사적으로 본청 진입을 시도했고, 이를 막는 국회 경비대와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국회 곳곳에서 고성이 울려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도 직권상정을 몸으로 막아야 할지, 한나라당 요구를 수용하는 양보안을 제시 일단 직권상정 처리를 막아야 할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결론은 타협이었다. 정세균 대표는 문방위 소속 의원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요구한 '미디어법 처리시한 확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디어법이 여론수렴이나 수정도 없이 직권상정을 통해 원안 통과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본회의까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상황이라 민주당의 자세 전환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민주당의 양보의사가 한나라당에 전달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오후 2시40분께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만난 데 이어 3시20분께 여야 대표가 만나 마침표를 찍었다.
마라톤 협상을 마친 여야 대표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박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협상이 타결됐다"고 자축한 반면, 정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협상장을 빠져 나와 "김 의장이 (중재안을) 뒤집을 줄 몰랐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회경기자
박민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