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같은 가방이라도 한국에서 사면 20%는 더 싸고 옷은 절반가격이면 살 수 있다. 쌀 때 많이 사고 싶다."
2009년 봄 불황의 풍경은 두 얼굴을 가졌다. 치솟는 물가에 실질소득 감소로 서민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한편 '서울이 싸다'며 지갑을 활짝 연 일본쇼핑객들로 쇼핑가는 경기침체속 기이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본 도쿄의 부촌인 세타가야에 사는 야마다 히로미(24ㆍ여)씨는 지난 달 2박3일 일정으로 한국 쇼핑여행에 나서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었다며 희희낙락했다. 여행 이틀째인 25일 롯데마트 쇼핑봉지를 들고 명동 일대를 돌아다니던 야마다씨는 "사면 살수록 절약"이라며 지갑을 서슴없이 열었다.
야마다씨가 이번 여행에서 구입한 물품은 루이비통 핸드백과 베르사체 선글라스, 비비안웨스트우드 구두, 디올 화장품 등 고가 수입제품은 물론 에뛰드 화장품, 일본에서 '생얼'화장품(화장 안한 맨얼굴처럼 보이게 해주는 제품)으로 인기 좋은 비비크림, 라면, 김 등 일반 식품류에까지 막힘이 없었다.
한국 체류기간중 쇼핑비용으로 20만엔(한화 약 313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는 야마다씨는 "일본에 비해 루이비통 가방은 2만엔 가량, 화장품은 2,000엔 정도 더 싼 것 같다"며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비비크림은 10개를 샀는데 싸니까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쇼핑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스파나 네일케어를 받았다. 일본에서 이미 인터넷을 통해 스파 예약을 잡았다는 야마다씨는 "일본에서는 스파가 워낙 비싸 평소엔 가지 않지만 여기서는 여행 왔으니 쇼핑 중간에 쉴 겸 한번 가보는 것"이라면서 "쇼핑 하면서 아낀 돈으로 스파도 하고 마사지도 받으니 너무 좋다"고 했다.
쇼핑이 목적이지 관광명소나 한국문화 및 음식체험에는 관심이 없었다. 야마다씨는 2박 3일간 대부분의 식사를 우동, 스파게티, 햄버거 등 간편한 패스트푸드로 해결했다. 전통거리인 인사동이나 관광명소를 들러 볼 계획이냐는 질문엔 한참을 망설이다가 "2박 3일이라 시간이 별로 없어서 쇼핑을 더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는 또다른 일본여성 와타나베 후미코(34)씨도 일정을 묻는 질문에 "쇼핑하고 스파하고 쇼핑하고 스파하고"라며 활짝 웃었다.
와타나베씨는 "요즘 엔화 가치가 굉장히 높아서 한국 와서 쇼핑하면 이익이 많이 남는 것 같다"며 "하나씩 보면 할인폭이 적은 것 같지만 쇼핑 물건 전체를 놓고 보면 가격이 일본의 절반"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일본어 통역을 하는 직원은 "백화점에 나온 고객들도 내국인은 표정이 어둡고 혼자 다니는 사람이 많은 반면 일본인들은 둘셋씩 붙어다니면서 목적구매가 많은 탓인지 발걸음도 빠르고 활기차 완연히 구별된다"며 "불황에 그나마 일본인들이 물건을 사주니 좋긴 하지만 국내 상황과 비교되니 떫떠름한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이현수 (숙대 아동복지 3)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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