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병을 고치려면 잠깐의 고통쯤은 참아야 한다는 것. 독성으로 약효를 노리는 극약처방도 있다. 잘못 쓰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
최근 증시는 미국의 은행 국유화 처방을 놓고 설왕설래다. 지난 주말 씨티은행은 사실상 국유화(미 정부지분 36%)됐고, 은행 건전성을 따지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시작되면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웰스파고 등 다음 국유화 타자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주말 뉴욕 증시도 금융주를 중심으로 재차 하락했다.
2일 우리 증시도 뉴욕을 뒤따랐다. KB 우리 신한 하나 등 은행주가 4~6%이상 빠지면서 전체 지수를 끌어내렸다. 바다 건너 흘러온 은행 국유화 처방이 남 얘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처방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단 '몸에 좋은 약'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악재(쓴 맛)지만 중기적으로는 호재(치료)라는 것이다.
은행 국유화가 양날의 칼임은 분명하다. 삼성증권 등이 내세운 일장일단을 따져보자.
주가 하락, 자본의 비효율성, 정부부담 증가는 쓴 맛(부정 요소)에 속한다. 정부 지분이 늘어나면 주가 재산정으로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밖에 없고, 이는 금융주의 추가 하락, 더 나아가 전체 지수의 하락으로 연결된다. 정부의 경영 제약으로 인한 경쟁력 추락, 정부의 재정적자 심화도 예상된다.
이를 상쇄할 약효(긍정 요소) 역시 3가지 정도다. 먼저 국유화는 은행 예금자들을 안심시켜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을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그간 이해관계 대립으로 미뤄졌던 부실자산 매각이 원활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경기침체의 악화를 막을 수 있는 대출의 확대도 기대된다는 논리다.
과거 사례도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가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이후 증시에 초기 충격은 있었지만 더는 추락하지 않고 몇 개월 만에 반등에 성공했고(삼성증권), 미국의 모델로 거론되는 스웨덴 노르웨이의 은행 국유화 기간(1992년)에도 의미 있는 반등이 있었다는 것(IBK투자증권, KB투자증권 등)이다.
오재열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씨티은행의 국유화가 시장에 줄 충격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충격의 기간 또한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에 대한 신뢰가 회복된다면 단기 충격 이후에는 악재 소멸이라는 긍정적인 재료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이르다. 신뢰는 회복할지언정 위기의 골이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와 북유럽 상황이 국지전이었다면 최근은 전면전 양상이다. 경기침체의 병증은 글로벌 전체로 퍼져있는데다 악화일로고, 동유럽 금융위기 등 새로운 증상도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원은 "조금만 길게 본다면 문제 해결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미국의 조치(씨티은행 지분확대)가 주식시장을 돌아서게 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조금만 길게'라는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이번 극약처방이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보수적인 대응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총체적인 미국 금융부실의 규모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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