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입법, 무더기 입법, 절차회피 입법, 졸속 입법, 행정 편의적 입법, 부처이기주의 입법,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입법, 대증 입법 등. 이들은 나쁜 입법의 표현이다. 그 결과로 탄생한 나쁜 법은 국민을 힘들게 하고 사회혼란을 가중시키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법치주의 하에서는 입법이 국가운영의 만사이며 국민복리의 기초다. 그 동안 우리는 정부입법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법질서를 이룩해 왔고 후발 개발도상국의 참고사례가 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의 입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의원입법도 활발하다.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일깨우고 촉진한 시민단체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입법활동 평가가 건수 위주로 행해져 국회의원 사이에 과당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폐해 또한 작지 않다. 로비입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고, 끼워넣기 입법, 큰 변경 없이 자구를 바꾸는 입법안으로 건수를 올리고, 입법공무원과 정부공무원에 대한 입법안 작성을 위한 요청이 도를 넘고 있다.
정부입법에도 문제는 있다. 입법이 국정 운영이나 공무원 평가의 기준이 되다 보니 불요불급한데도 실적 올리기식 입법이 행해지고, 입법이 행정조직의 존재이유 및 활동근거가 되다 보니 정부 차원이 아닌 부처나 과나 팀 단위로 입법이 행해진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으며 나아가 폐해를 가져온다. 졸속입법, 불필요한 입법으로 예산이 낭비되고, 공무원의 업무 수행이 지장을 받으며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훼손되고, 기업이나 국민 개인의 활동에 불필요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입법의 잘못에는 국민의 책임도 크다. 국민이 입법감시를 제대로 한다면 나쁜 입법을 막을 수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표심을 좇을 수밖에 없다. 입법활동은 양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질을 평가하여야 한다. 좋은 법과 나쁜 법을 가려야 한다. 나만 살자고 현재의 입법상황을 이용하여 로비입법이나 떼법을 관철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선진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입법의 질 높이기 정책을 우리도 추진하여야 한다. 좋은 법은 대립되는 이익을 적절히 조절하는 치우침이 없는 법, 명확하고 알기 쉬운 법, 이해관계인의 의견 수렴 등 적정한 절차를 거친 법, 현실에 적합하고 집행 가능성이 있는 법, 필요한 법, 국민이 지킬 수 있고 신뢰를 받는 법, 너무 자주 바뀌지 않는 법,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법이다.
경제위기 하에서 사회 불안과 갈등이 커지는 지금 좋은 법질서의 확립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다. 법이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어 주고 국정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어야 한다. 용산 참사와 그로 인한 갈등의 근본문제는 법제도의 결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공익사업 시행에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입법이 불충분하고, 강제철거에 관한 입법이 후진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제철거의 기본법인 행정대집행법은 1954년 제정 이래 한 번도 실질적 내용 변경이 없었던 점에서 시대에 뒤진 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균형 있고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입법단체의 발전이 필요하다. 입법이유제도, 입법영향평가제도, 적법한 입법절차 등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한 제도 정비와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주권자인 국민이 좋은 입법과 나쁜 입법을 가려내는 입법감시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법은 국민복리이며 사회안정이며 국가 경쟁력이다.
박균성 경희대 법대 교수ㆍ 한국공법학회 차기회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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