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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동종교배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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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동종교배의 시작과 끝

입력
2009.03.0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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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실력자 A가 ㄱ공기업의 인사담당 임원 B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 임기 만료되는 ㄴ자회사 사장 C씨의 연임에 큰 문제 없겠죠"라고 말한다. 그럼 B씨는 어떻게 반응할까. "대통령의 뜻인가요?" 이렇게 되물을까. 그런 불경스러운 일을 할 리가 없다. C씨의 배경을 알기에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C씨는 연임된다. 그게 A씨의 개인 민원인지, 뭔지는 확인할 길 없다.

#재계 유력자 K씨가 청와대 고위관계자 L씨를 찾아가 공석인 ㄷ공기업 고위임원 자리에 M씨를 천거한다. 이에 L씨는 "거기엔 여당의 N씨가 추천한 O씨가 이미 내정됐다"며 난색을 표한다. 뭔가 미심쩍었던 K씨가 평소 알던 N씨에게 O씨 추천 여부를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뛴다.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K씨는 M씨안을 관철시킨다.

인맥 줄대기가 능력ㆍ성과 잣대

최근 이명박 정부의 인사를 둘러싸고 시중에 나도는 소문에 약간의 살을 붙여본 얘기다. 전자는 정권 주변 사람의 부탁이면 으레 권력핵심부의 의중이 실렸을 것이라고 여겨 알아서 기는 행태를 빗댄 것이고, 후자는 권력 내부에서 서로 자리다툼을 벌이며 보다 힘센 인물을 끌어다 대는 구태를 그려본 것이다. 이런 자천타천의 사람 심기에 특정 지역과 학맥, 정권 공신 등 이런저런 인연이 개입되는 것은 상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인사 내용을 일일이 알까. 서울시 규모라면 몰라도 그 많은 공기업까지 포함해 수천개의 자리가 요동치는 정권 차원이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안다고 해도 장ㆍ차관과 부처 핵심보직, 공기업 CEO 등 수백 개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이런 수준의 인사에서도 정권은 출범 초 강부자 혹은 고소영 내각이니 하는 등의 비아냥을 자초했으니, 그 아래 실무그룹에서 이뤄지는 인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럼 집권 2년차 인사는 달라졌을까. 이 대통령은 얼마 전 방송토론회에서 인사와 관련, "대통령이 제대로 일하기 위해 학연 지연보다는 누가 일을 잘할 수 있느냐를 본다"고 말했다. 보통 때 같으면 책잡혔을 말이지만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묻혀 쉽게 넘어갔다. 실제 2기 내각의 면면에서 일부 도덕적 결함과 정치적 약점이 드러났으나 삶에 지치고 찌든 여론은 애써 눈감아 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능력과 성과, 효율이라는 고무줄 잣대가 연줄, 청탁인사를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때로는 10년 좌파정권의 흔적을 물갈이하는 정치적 무기로 동원되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지침은 훌륭한 근거가 된다. 그 양태는 기존의 지역 학맥은 물론, 과거 정권에서 경원시된 '모피아' 등 특정 세력의 부활로, 또 중ㆍ하급직까지 폭 넓게 이어진다.

최근 이뤄진 금융공기업과,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기업의 CEO 등 요직 인사는 대표적 사례다. 인사 결과는 시중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누가 봐도 혀를 찰 만한 '동종교배' 양상을 보여줬다. 그런 부분이 지적되면 어김없이 "능력을 따져야지, 아직도 인맥 타령이냐" "뭘 몰라서 그러는데, 전체적 비율로는 별 게 아니야"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함께 4대 권력기관의 하나인 국세청장 자리가 한 달 이상 공백인 것에 대해 청와대는 마땅한 인물을 못 찾았기 때문이라는데, 그 '마땅한'이라는 단어의 뜻이 모호하다. 특정 지역과 인맥의 독식을 피하는 그림을 찾는 의미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호가호위 잦고 공직안정성 흔들

동종교배 인사의 해악은 수없이 많지만 두 가지 점이 특히 문제다. 첫째는 권력 인맥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세력이 발호하고 결국은 끼리끼리 뭉쳐 공복의식보다 사적 이익을 좇게 된다. 당연히 소통은 차단된다. 둘째는 줄대기가 능력과 성과의 척도로 부각돼 공직사회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곳곳에 불만과 불신의 피로가 축적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주 취임 1주년 국무회의에서 사즉생의 각오를 당부하며 따뜻한 법치와 건전세력의 겸허한 수용을 강조했다. 자연계에서 동종교배는 치명적 유전자 결함을 낳아 종의 사멸을 초래한단다. 인간사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날 리가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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