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관련법을 놓고 한나라당이 모순에 빠졌다. 야당의 결사반대와 여론 설득 실패로 개정이 여의치 않자 법안의 핵심 일부를 수정키로 했다. 최대 20%까지 허용하기로 했던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지분 소유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그 동안 야당과 일부 언론단체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재벌의 방송장악'이라는 비판을 피하려는 취지인 것 같다.
언뜻 큰 것 하나 양보한 것으로 보이지만, 법안 개정의 정당성마저 잃을 수도 있는 발상이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방송산업구조 개편을 고집하는 이유는 경제적 효과성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춰 산업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도 생기고, 방송의 질도 놓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다. 지상파의 경우 많게는 수 조원의 돈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대기업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지금의 경제상황에서는 아무리 컨소시엄을 구성한다 해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란 어렵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그 동안 강조해온 미디어의 산업적 측면을 심각한 고민이나 연구 없이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그렇게 한다고 야당과 일부 언론단체의 비판과 반대가 사라질 리 없다. 오히려 정치적 의도와 의혹만 더 키운 꼴이 됐다. 대기업을 배제하면서 신문의 방송 참여는 그대로 두어 미디어 관련법 개정이 일부 보수신문들의 방송 소유를 도와주는 '조중동 특혜법' '여론 독점법'이라는 소리만 듣게 됐다. 벌써 민주당에서는 "결국 일부 신문에 채널을 주자는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은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도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것이 추세라면 대기업의 미디어 진출 역시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한 쪽은 안 되고, 한 쪽은 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오해를 사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신뢰를 떨어뜨린다. 법과 정책에는 지켜야 할 원칙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버리면서까지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법을 고치려는 이유는 정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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