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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잊혀진 '학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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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잊혀진 '학동마을'

입력
2009.03.0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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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잊는 건지, 아니면 모종의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 얘기다. 이 그림을 둘러싸고 전직 국세청장 부인과 현직 국세청장 간에 진실게임이 벌여졌던 것이 불과 한 달 반쯤 전이다. 한 동안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숱한 입방아 거리를 제공해준 이 의혹사건이 어느 새 우리의 눈과 귀에서 사라졌다.

그 일로 현직 국세청장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에게서 인사청탁 대가로 그림을 받았다고 주장한 전직 국세청장 부인은 수감 중인 그녀의 남편이 변호인을 통해 그녀의 행위를 크게 질책한 뒤 입을 닫았다. 진실은 묻힌 채 사건은 유야무야 됐다.

의혹이 제기된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후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혐의가 드러났으면 당연히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어야 하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으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만일 전직 국세청장 부인이 허위사실을 주장한 것이라면 왜 그랬는지 밝히고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사건은 고위 공직자와 정부의 신뢰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다. 의혹도 의혹이지만, 그 의혹을 규명하지 않고 덮어버리려는 정부의 태도가 더 심각한 문제다. 국가의 중추 사정기관을 자임하는 검찰이 이런 사안을 모른 채 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검찰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의혹이 불거진 지 한달 만인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김경한 법무부 장관에게 물었다. 왜 수사를 하지 않느냐고. 김 장관의 답변이 참 요령부득이다. "언론보도만 있고 단서도 없어서 수사를 안 한다. 이첩하면 할 수 있다." 누구한테 뭘 이첩하라는 말인지, 검찰이 언제부터 남이 이첩하는 사건만 수사했는지 알 수 없다. 합리적으로 충분히 의심이 가는 정황이 있는데, 어떤 단서가 더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명백한 물증인 그림이 있으니 그 유통경로만 추적해도 진실은 쉽게 가려질 터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뇌물 받은 사실이 드러나도 조용히 옷만 벗기고 면책하던 시절이 있었다. 20~30년 전 독재정권 시절이다. 치부를 드러내서 공연히 비판세력에 빌미를 줄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동업자 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학동마을' 그림 의혹이 덮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지금 이 사회에서 권력을 쥔 이들 사이에 이러한 '침묵의 카르텔'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주 한국일보가 단독 보도한 법무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66개국의 법질서 경쟁력을 부문별로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서 법질서 경쟁력이 가장 낮은 집단은 정치인이고, 기업과 정부가 그 뒤를 이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반면, 시민부문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법질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치권과 정부, 기업의 준법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실증하는 조사 결과인 셈이다.

그렇다면 법질서 확립의 첫걸음은 국민 대다수가 의심을 품는 고위 공직자의 드러난 의혹을 제대로 철저히 조사해서 올바로 처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법의 지배를 통해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으려는 것이 법치(法治)의 본뜻이라고 한다면, '학동마을' 그림로비 의혹 덮기는 법치 훼손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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