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파트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삼일절이니만큼 가가호호 태극기를 달자는 동대표의 말씀이었다.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조건반사적으로 어느새 삼일절 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언제 불러도 막힘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 국어 시간도 떠올랐다. 정인보 선생의 그 시가 첫 페이지에 실려 있었다. 국어 선생님은 10분의 시간을 주면서 그 시를 암송하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 목청 높여 부르던 노래였기에 시를 외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사건은 10분 후 선생님이 학생들을 호명해 시를 외우게 할 때 일어났다. 그 시를 끝까지 외운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자리에 앉은 아이들도 제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도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일어났다. '기미년 삼월 일일'까지는 순조로웠지만 '정오'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파미레'라는 음에 맞춰 노래를 해버리고 말았다. "노래를 해라, 노래를 해!" 선생님은 고개를 흔들며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태극기를 어디에 두었더라, 서랍을 뒤지다가 은연중에 왼쪽 가슴에 오른손이 올라갔다. 좀 민망한 그 자세가 곧바로 국기에 대한 맹세로 연결되었다. 길을 가다가도 엄숙한 그 목소리가 들려오면 태극기가 있는 쪽을 향해 서서 얼음 땡이 되곤 했다. 새삼 내 몸을 구속하고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삼일절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