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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독서가 어색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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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독서가 어색한 사회

입력
2009.03.0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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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브리나> 를 기억하시는지. 이 영화는 원래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54년에 만든 로맨틱 드라마였는데, 1995년 시드니 폴락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험프리 보가트, 윌리엄 홀든, 오드리 헵번 등이 출연한 빌리 와일더의 원작은 두 명의 근사한 남자 중 한명을 선택해야 했던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로, 꾸준한 사랑을 받다가 거의 반세기가 흐른 뒤 시드니 폴락 감독에 의해 다시 새롭게 탄생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의 연출자 시드니 폴락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진 헐리웃 톱 스타 해리슨 포드와 <가을의 전설> 등으로 급부상한 줄리아 오몬드를 전격 캐스팅해 한 편의 아름다운 로맨틱 드라마를 완성했다.

<사브리나> 의 책 읽는 운전기사

미국 롱 아일랜드 북쪽 해안에 자리 잡은 대저택에는 래러비 일가와 많은 하인들이 살고 있다. 이 집의 운전기사 페어차일드의 딸 사브리나(줄리아 오몬드)는 래러비 가의 둘째 아들 데이빗(그렉 키니어)을 연모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던 중 파리 유학길에 오르게 된 사브리나는 떠나기 직전 데이빗의 방에 몰래 숨어 들어가 사랑의 감정을 밝히지만, 때마침 데이빗 방에 와있던 형 리누스(해리슨 포드)가 동생 대신 고백을 듣게 된다.

이에 깜짝 놀란 사브리나는 서둘러 파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사브리나는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고, 그녀는 데이빗과 리누스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리누스와 사랑의 해후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일부 평론가들은 오드리 헵번이 맡았던 사브리나 역을 줄리아 오몬드에게 맡긴 것은 역사상 최악의 캐스팅이라면서 리메이크 작품을 혹평했다. 세기의 여우(女優) 오드리 헵번에 대한 흠모가 줄리아 오몬드에 대한 폄하로 이어졌으리라. 하지만 나는 '각별한 이유'로 원작보다는 리메이크 작품에 마음이 더 끌린다. 리메이크 작품에는 1954년 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사브리나의 아버지 페어차일드가 딸 앞에서 옛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신이 왜 자가용 운전기사로 취직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그가 직업 선택에서 고려한 조건은 오직 하나, '독서할 시간적 여유'를 많이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그는 대개 독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래러비 가에서 살림집으로 내준 별채도 온통 책으로 가득하다. 부잣집 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틈만 나면 책을 손에 드는 그의 모습은 낯설고 신기하다. 우리의 통념과 상식(?)으로 볼 때 지극히 운전기사답지 않은 모습이다. 이것이 내가 리메이크 <사브리나> 를 좋아하는 이유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한국 영화에서도 '독서할 시간적 여유'만을 직업선택 기준으로 삼는 페어차일드 같은 캐릭터를 설정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감, 리얼리티가 뚝 떨어지지 않을까? OECD 회원국 중 독서율 최저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네 풍토에서는 대단히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설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 이력'대입 반영 반가워

부산, 울산, 경남 지역 19개 대학과 부산시 교육청이 지난 달 23일 다양한 독서활동 내용을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협약을 맺었다. 수능과 내신 위주 선발에서 벗어나 잠재력과 창의력을 지닌 신입생을 뽑기 위해 독서 이력을 전형 자료로 활용하는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다. 독서활동이 대입 전형요소로 부각되면 학교교육에서 독서활동이 활발해질 것은 당연하다.

특히 입시 준비에 시달리느라 책을 멀리하는 고교생들 사이에 책 읽기가 일상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시도가 부디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를, 그리하여 '독서할 시간적 여유'를 직업선택 기준으로 삼는 인물이 영화에 나오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 오기를 고대한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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