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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반지 속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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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반지 속의 여자

입력
2009.03.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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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

스무살, 서울로 떠나는 내게

경제 비상용으로 끼워진 금반지

그 용도를 찾지 못해서 오랫동안 머물렀네.

젊음이 상처가 되는 밤마다

손수건 대신 눈물 닦아주던 손가락의 반지

그마저 위로가 절로 되던 둥근 해 같은

눈물이 닿은 손가락은 더 빽빽하게 조여왔네.

구애의 반지 그 위에 새로 끼워졌지만

빛을 잃은 그 반지 뽑혀지지 않았지.

부끄러워 입을 가린 사진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네, 그 반지

서른 살, 손마디가 굵어져

빼어볼 수 없어 언제나 같이 있네.

그 손가락 살을 누르며 존재를

빛내주던 그 것,

십년 동안 변함없이 머물렀던

생의 하사품, 추억의 금빛 물결

이제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반지 속의 나날이여.

고향을 떠나온 많은 사람들이 고향의 기억과 함께 지참하는 것이 경제 비상용 반지이다. 나 역시 그런 반지 하나를 끼고 독일로 왔다. 가끔 그 반지를 들고 전당포 앞을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서성거린 기억이 있다.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둥근 해같은 반지는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굵어지는 손마디 때문에 나 역시 반지가 빠지지 않아서 어느날 비누를 손가락에 잔뜩 바르고는 반지를 빼내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 반지가 손가락에서 쑥 빠져나오자 반지를 끼고 살았던 시절이 반지가 되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반지를 바라보았다. 반지를 끼고 지냈던 시간만큼 나이가 든 얼굴도 반지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다시 반지를 억지로 손가락에 밀어넣었다. 아직, 반지 속의 나날과 이별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정은숙 시인이 말하는 '생의 하사품, 추억의 금빛 물결'과 정말, 정말로 아직은 이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이 시가 생각났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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