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의상, 신나는 춤과 노래…해마다 2월이면 전 세계에서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찾는다.
올해 축제에서는 베네치아 주민 모임인 ‘베네치아닷컴’ 회원 600명이 아메리카 원주민 복장을 하고 참가했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백인에게 살 곳을 뺏긴 원주민처럼, 관광객이 주신들의 주거공간을 빼앗아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였다.
모임 회원들은 한때 16만4,000명에 이르던 주민이 6만명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5월에는 관을 들고 시청까지 행진하는 ‘베네치아의 장례식’을 거행키로 했다.
영국의 옵서버는 주거 및 편의시설 등이 관광객을 위한 호텔 등으로 개조되는 등 불편이 많아 주민들이 하나 둘씩 도시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베네치아가 쇠락하고 있다고 1일 전했다.
베네치아는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 위에 흩어진 118개의 섬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진 물의 도시다. 독특한 풍경 덕에 연 1,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이들 관광객이 뿌리는 돈으로 주민들이 함박웃음을 지을 만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호텔 주인, 수상택시 운영업자, 식당 주인 등이 집을 매입, 관광객을 위한 시설로 개조하는 바람에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만 1,000가구의 주거공간이 사라졌다. 관광객을 위한 시설은 늘고 있지만 주민의 생활에 필요한 병원, 세탁소, 슈퍼마켓 등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주민들이 산부인과 병원 살리기 서명 운동에 나설 정도다.
주민을 위한 문화시설도 부족해 저녁에는 소일거리가 없다. 빵집을 운영하는 엔리코 크로사라(40)는 “해 지면 아무 것도 할 게 없어 야간 출입 통제를 당하는 기분”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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