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실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2) 총리가 이번엔 공식 석상에서 외국 퍼스트레이디를 놓고 '진한 농담'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달 24일 로마에서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양국간 원자력발전소 건설 협정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갖다가 돌연 "당신의 부인을 내가 보냈다"고 속삭인 것으로 밝혀졌다.
1일 이탈리아 유력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레푸블리카 등 언론 온라인판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인 가수겸 모델 카를라 브루니가 이탈리아 출신임을 빗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가 프랑스어로 귀엣말을 하자 사르코지 대통령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짓궂은 '조크'임을 깨닫고 쓴웃음을 짓는 모습이 TV화면에 잡혔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이 농담으로 여긴다고 문제가 끝나지 않게 됐다. 안나파올라 콘차 등 이탈리아 야당 여성 의원 두 명은 이번 일을 계기로 여성비하 발언을 해온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못된 버릇'을 고치겠다며 그를 고소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콘차 의원 등은 그가 유럽인권규약을 위반한 혐의를 인정토록 2일 유럽인권재판소에 청구하기로 했다.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장을 내려는 것은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국내에선 재임중 면책특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제소를 받아들이면 그는 유럽 정상으로 사상 처음 법정에 서는 망신을 당하게 된다.
콘차 의원은 이탈리아에서 빈발하는 성폭행 사건에 대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를 막으려면 미녀 한사람 한사람 마다 군인들을 붙여야 한다"고 한 것도 문제 삼기로 했다. 여성계는 "대단한 무례"라며 반발했지만 그는 이탈리아 여성의 미모를 칭찬한 것이라고 발뺌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또 17년간 식물인간으로 있으면서 존엄사 논쟁을 일으킨 엘루아나 엔글라로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막말을 해 맹비난을 샀다. 그는 지난해 3월엔 "생활이 어려운 여성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게 좋다"고 농을 하기도 했다.
앞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젊고 잘 생겼으며 선탠까지 했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즉각 "오바마에게 모욕적 발언"이라며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미 민주당 진영도 비난에 가세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저능아'라며 맞섰다. 공교롭게도 그때 브루니는 "몰상식한 총리가 있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어서 기쁘다"며 비웃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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