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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3·1절에 되새기는 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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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3·1절에 되새기는 애국

입력
2009.03.0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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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선각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은 빼어난 서예가일 뿐 아니라 금석학에도 밝았다. 일제가 나라를 빼앗고 문화재를 마구 약탈할 때, 선생은 남 먼저 우리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삼국부터 조선시대까지 서화가들을 총정리하고 평하여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을 발간했다. 이를 읽어보면 우리의 유구한 문화가 얼마나 품격이 높았는지 알 수 있다.

전형필(全鎣弼) 선생이 우리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사재를 털어 수집할 때 감정하고 조언해준 분도 그다. 그 자산이 현재 간송 미술관 소장품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오세창 선생은 3ㆍ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다.

역사적 '임시정부 헌법' 계기

1919년 3월 1일은 실로 역사적인 날이다. 그 의의는 민족의 염원을 담은 독립선언서를 선포하고 유관순 열사가 상징하는 전국적 만세운동을 펼친 데 그치지 않는다. 그 해 4월 11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해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엄연한 국가로 존재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

국제법상 국가가 성립하려면 영토, 국민, 정부가 있어야 한다. 임시정부 수립은 한반도와 조선의 백성과 함께 정부가 존재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에도 조선의 백성은 일본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토와 주민이 그대로 있고 이제 정부까지 수립한 엄연한 독립국가임을 선포한 것이다. 그간 일제는 무력으로 공포상황을 조성하여 합병조약에 강제 서명하게 하였고, 조약이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조선 황제 고종까지 친일 매국노와 짜고 독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서 더욱 중요한 사실은 헌법을 제정ㆍ공포한 것이다. 국가가 존재하려면 헌법이 존재해야 하는데, 임시정부는 바로 그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大韓民國臨時憲章)> 을 공포했다. 이어 러시아령에 있던 대한국민의회 등을 통합하고 9월에 다시 <대한민국임시헌법> 을 선포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헌법' 명칭이 처음 사용된 헌법 문서다.

임시정부의 헌법 제정작업은 조소앙(趙素昻) 선생과 신익희(申翼熙) 선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신익희 선생은 1918년 4월부터 3ㆍ1운동 직후까지 서울에서 비교헌법을 강의하였으니 독립국가에 헌법이 필수적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임시정부 헌법은 그후 1925년에 개정되고, 1927년에 「대한민국임시약헌」으로 개정되었으며, 1940년 「대한민국임시약헌」, 1944년 「대한민국임시헌법장」으로 5차례 개헌을 하면서 광복을 맞이하였다.

드디어 1945년 연합국의 승리로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우리에게는 하루바삐 우리 힘으로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여기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헌법의 제정이었다. 이를 누구보다 빨리 인식하고 행동에 옮긴 이가 해공 신익희 선생이다. 해공 선생은 1945년 12월에 서울에서 행정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법률 전문가들을 모아 헌법기초작업을 시작하여 1946년 3월에 헌법안을 만든다.

이 작업에 참여한 이들이 대부분 일제 때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활동한 사람이라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유진오 선생에게 자료를 넘겨주고 뒤에서 지원하게 된다. 실제 1948년 제헌국회를 구성하기위한 5ㆍ10총선에서 친일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부정되었다. 그래서 유진오 선생은 제헌국회에서 헌법기초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건국을 위한 1948년 헌법 제정의 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신익희 선생이다.

숱한 선열의 나라사랑 결실

이처럼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느날 갑자기 건국된 것이 아니다. 그 기반인 제헌헌법은 1919년 3월 1일 이후 선열들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오세창 선생과 같은 수많은 선조의 나라사랑이 있었다. 이번 3ㆍ1절은 이를 새롭게 되새기는 날이었기 바란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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