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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新학기 '유랑의 辛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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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新학기 '유랑의 辛학기'

입력
2009.03.0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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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대 2학년에 다니는 A(20)씨. 지난해까지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그는 지난달 말부터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친구 집에 얹혀산다. 기숙사비로 냈던 15만원만 주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점 관리를 못해 기숙사에서 쫓겨 났다"며 "월 35~40만원 하는 하숙집은 생각지도 못해 친구에게 신세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S대학 3학년 B(24)씨는 이번 학기에도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지난해 두 학기에 이어 세 번째다. 학자금과 생활지원금 모두 450만원씩 대출 받았던 그는 올해는 장학금 100만원을 받아 300만원만 대출 받았다.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지난해 생각지도 않던 학군단에 지원했다. 졸업 후 장교 월급을 타면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다. 그는 "나이 24세의 대학생이 빚만 1,200만원이다. 과외까지 끊겨 원금 상환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취업난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가운데 대학 신학기가 시작됐다. 알찬 학기를 꾸리겠다는 희망은 온데 간데 없이 많은 대학생들에게 신학기는 '고난의 행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돼야 할 거처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다. 서울지역 하숙비가 대략 35~40만원 선으로 벌이가 신통찮은 대학생들에게는 부담이다. 때문에 A씨처럼 친구들과 동거하면서 방세를 줄이거나 값싼 고시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대학 4학년 이모(28)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는 "친구와 지난달 신림동 반지하 월세 25만원짜리 방으로 이사해 방값을 나눠 내고 있다"며 "취직이 안 돼 졸업까지 미룬 마당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싫어 인터넷 쇼핑몰에서 된장, 청국장 등을 팔고 있다"고 했다.

대학 3학년 최모(22ㆍ여)씨는 "최근 하숙집에서 월세 20만원짜리 고시원으로 옮겼다. 식사는 대부분 학교 구내 식당에서 해결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활비가 적게 드는 학교 기숙사나 '지방학사'의 입사 경쟁률도 치솟았다. 지방학사는 지자체나 향우회가 동향 출신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는 기숙사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경기장학관의 경우 올해 120명 모집에 850명이 몰려들었다.

지난해 550명이 지원한 것에 비해 치열한 경쟁이다. 이번 학기 강원학사에 입사한 서울대 이준철(25)씨는 "학교 근처 보증금 없는 방 한 칸 사용하는 데도 월 45만원선인데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70만원을 훌쩍 넘는다"며 "이용료가 싼 학사 등에 경쟁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자금 마련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대학생들의 단골 아르바이트였던 과외 수요도 뚝 끊겼다. 이화여대 이모(21)씨는 "작년 여름만 해도 2~3명을 가르쳤는데 지금은 1명으로 줄었다"면서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마저도 그만둔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막노동으로 눈을 돌려도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한 직업소개소 사장은 "겨울방학을 맞아 일자리를 찾는 대학생들의 문의전화가 급증해 하루 10건이 넘었다"면서도 "공사장에서 쓰는 용어도 모르고, 대학생은 잠깐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 10명 중 1명이 일을 얻을까말까 하다"라고 말했다.

줄어드는 아르바이트 자리와 반비례해 학자금 대출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05년 2학기부터 정부가 보증하는 방식으로 바뀐 학자금 대출은 2006년 51만5,000여명에서 지난해 63만5,000여명으로 2년 새 23%가량 증가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올해는 65만명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대학생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0월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670명이던 학자금 대출 관련 신용불량자는 지난해 전반기에만 7,454명으로 급증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 홍모(24)씨는 "학자금 대출이자가 7.3%로 아파트 대출보다도 높고, 연체 기준 또한 직장인과 같다"며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대출은 희망이 아닌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원생도 높은 등록금과 생활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 대학 인문학 대학원생인 최모(29ㆍ여)씨는 3학기를 마치고 지난 1년을 휴학했다.

450만원에 달하는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 보습학원 강사 자리를 겨우 구했지만 월 90만원 안팎의 수입에서 월세 30만원과 각종 공과금 10여만원을 제하면 빠듯한 살림이다.

휴학하면서 100군데가 넘는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 봤지만, 최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그는 "오라는 곳만 있었다면 대학원도 포기했을 것"이라며 "부모님이 학비를 어렵게 마련해줘 겨우 복학했지만,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 때문에 대학생들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학자금 대출금리를 대폭 낮추고, 기숙사 제공 폭을 늘리는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김동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정부는 학자금 대출금리를 현재의 절반 이하로 낮추고, 대학은 투명한 재정운영을 통해 장학금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정헌 기자

이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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