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르겐 브라터 지음ㆍ이온화 옮김지식의 숲 발행ㆍ264쪽ㆍ1만2,000원
탁 트인 고속도로를 느긋하게 달리다가도 쌩~ 하고 추월을 당하면 저절로 피가 끓고 액셀러레이터에 힘이 들어간다. 신문에 매일 실리는 ‘오늘의 운세’는 사실 넌센스에 불과한데도 여전히 수많은 독자가 애독한다. 여성들은 어쨌든 키 큰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허리와 엉덩이 둘레의 비율이 1대 1.3인 여성을 최상의 미인으로 꼽아왔다.
왜 이럴까? 합리적으로 보자면 남이 추월하든 말든 기분좋게 운전하면 그만이고, ‘오늘의 운세’는 믿거나 말거나다. 키가 작거나 허리가 잘록하지 않다고 해서 출세나 성생활, 출산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선호에도 맹목적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위대한 이성으로 문명을 일궈왔고 첨단기술까지 갖춰 이젠 ‘호모 테크니쿠스(homo technicus)’라고 자부하게 된 현대인은 여전히 이런 불합리와 맹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독일의 저명한 임상의로 의학ㆍ치의학박사인 유르겐 브라터의 <정장을 입은 사냥꾼> 은 이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의 행동과 반응의 뿌리를 생태진화론적 관점에서 파헤친 과학 에세이다. 정장을>
저자에 따르면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류가 이 세상에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00만년 전. 그 때 이래 인류의 진화를 24시간으로 압축하면 자정이 되기 6분 전에야 비로소 인간은 농업을 시작한 셈이다. 당연히 인간 행동과 심리, 생태 메커니즘 속에는 6분간 개발된 문명의 세례 보다는 23시간 이상 사냥꾼과 채집자로서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온 ‘사냥꾼’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인 ‘우그르’와 그의 부족을 내세워 ‘사냥꾼’ 시대 인류의 하루를 스케치하고 그들의 행동과 심리와 생태가 현대인에게도 고스란히 재현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렇게 대조하면, 추월당할 때의 흥분은 경쟁자에게 사냥감을 강탈당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태고적 사냥꾼의 절박한 본능이다.
‘오늘의 운세’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대한 합리적 정보가 전혀 없던 수백만년 동안 인류는 미래를 오직 감각과 미신, 신비에 의존해왔고 그 습성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키 큰 남자 역시 ‘사냥꾼’ 시대의 여성 인류에겐 질좋은 고기와 가득찬 식량창고의 보증수표였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현대인의 탐식, 물이 있는 풍경을 좋아하는 잠재의식, 천둥이나 번개에 대한 두려움 등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습성에 대한 분석을 이어간다. 그리고 이런 분석을 통해 오늘날의 범죄나 스트레스에 따른 암 등 병리적 현상이 문명 발전 속도와 진화유전자의 불일치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는 추론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간 행동의 기원을 석기시대 선조에게서 찾으려는 자신의 시도가 규명하기 어려운 ‘추측과 이론’에 따른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 추측과 이론은 그의 독단이 아니라 고생물학, 심리학, 생물학, 행동학 등 관련 학문들의 연구에 근거하고 있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