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탕' '영양탕' '보신탕' 등의 간판이 붙은 식당을 슬슬 피하게 되더니 지난해에는 한 차례도 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버려진 애완견들이, 뻔히 짐작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애호가의 식탁에 오르는 끔찍한 장면을 TV로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착하고 예쁜 녀석들을…" 하는 연민과 분노에 사로잡힌 때문이다. 집에서 키우던 닭과 돼지를 별 거리낌 없이 잡아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비추자면 '동물 차별'이자 위선일 수 있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아지가 귀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착하고 예쁜 녀석들이란 생각은 플라타너스에 대해서도 같다. 처음에는 강인한 생명력과 주체하기 어려운 정열을 울퉁불퉁한 옹이로 맺은 남성적 모습에 이끌렸지만, 지금은 조심스럽게 흰 속살을 드러내고 야무지게 가지와 잎을 피워 올리는 여성적 모습에 매료된다. 지난해 6월 이 난에서 언급했듯, 말이 가지치기지 아예 굵은 등걸까지 치는 봄맞이 가로수 정비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우악스럽게 잘라도 웬만하면 살아나는 게 플라타너스지만 지난해 굵은 팔까지 잘린 아파트 앞의 플라타너스 두 그루는 끝내 싹을 틔우지 못했다.
■잘려진 등걸에서 싹을 틔우려고 애쓰더니, 가늘게 돋았던 두 가닥 가지가 말라 비틀어졌다. 그토록 강인한 생명력을 타고 났지만, 워낙 심하게 도를 넘은 상처를 회복하기에는 힘이 부쳤던 모양이다. 싹을 틔우고, 가지를 만들고, 잎을 매달아 광합성을 통해 얻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다가 생명을 떠받치는 에너지균형을 깨뜨린 셈이다. 그런데도 서울 번화가 가로수의 가지치기는 더 살벌해졌다. 언주로에는 직경 30㎝가 넘는 등걸까지 잘려나가 거대한 새총이나 말뚝처럼 된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서 있다.
■앙칼진 옹이 위의 가지만 쳐내려면 품이 이만저만 들지 않는다. 편하게 일하려면 대강 그렇게 자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곳곳을 살펴본 결과 작업편의는 부차적 요인 같았다. 구로구 고척교 남쪽길이나 서대문구 그랜드힐튼 호텔 앞길 등의 플라타너스는 모두 옹이 위 잔가지만 잘렸다. 성산대교 남단 거리공원의 플라타너스는 아예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미루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멋진 가지를 뻗었다. 아무래도 간판을 가리지 않게 해 달라는 상업적 요구가 강한 곳일수록 플라타너스가 모진 운명에 시달린다. 이 모든 게 아낌없이 주는 플라타너스를 깊이 사랑하게 된 중년 사내의 쓸데없는 오해였으면 싶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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