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강 지음/텐에이엠 발행ㆍ320쪽ㆍ1만원
여기 막 마흔에 접어든 세 명의 여성이 있다. 강력한 부권(父權)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인생의 보험 삼아 '적당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던 화자. 며칠 전까지 결혼 10주년에 어디로 여행 갈까를 화제 삼았던 남편이 300만원이 든 통장만 남긴 채 갑자기 자살을 했다. 유복한 집 딸로, 쌍둥이의 엄마인 화자의 친구 소정. 아쉬울 것이 없지만 젊어서는 연상의 여인을, 나이 들어서는 어린 것들을 쫓아다니느라고 정신없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우울증 약을 입에 달고 산다. 카피라이터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친구 지소.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능력있는 워킹맘이지만 결혼 10년 동안 직장을 20번이나 바꾼 이상주의자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 여성 3명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29세>(1996)로 등단한 유춘강(43)씨의 세번째 장편 <란제리 클럽> . 소설 속 여성들은 결혼한 지 10년쯤 지나 더 이상 깨뜨릴 환상조차 사라졌으며 젊음 역시 사그라들었고, 결혼생활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원망으로 마치 '잘못 탄 버스를 내려야 할지 아니면 그냥 가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결혼 전 꿈꿨던 '로맨틱 란제리 클럽'은 어디로 가고 '엉망진창 란제리 클럽'을 결성해야 할 판. <29세>의 10년 후 모습쯤 되는 이 여성들은"결혼은 늪이다. 사랑이란 미끼 때문에 빠지는 늪"혹은 "나이 마흔살이 되면 남편보다 친구가 필요하다"고 외치다가도"헌 신발짝이라야 갖다버리지 남편인데 어쩌겠느냐고 하시더라"는 친정엄마의 말을 곱씹으며 가까스로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간다. 란제리>
자살한 남편이 사실은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화자의 경우처럼 설정이 다소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만, 세 여성의 방황이나 고민은"모두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마흔살 이쪽저쪽 현실 속 중년 여성들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화자의 두 친구가 갈등 속에서도 끝끝내 결혼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결말부분은 작가 역시 결혼제도의 가치를 전면부정할 수 없음을 내비치는 것. 허나 자기애나 자족감 없이 마치 "인생이라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 끌려"가는 식으로 영위되는, 관습화된 결혼생활에 대한 작가의 회의는 완강하다. 때문에 남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리고 남편을 격렬히 사랑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묵혀줄 정(情)으로 결혼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화자가 남편과의 사별 후 비로소 "나는 왜 그와 결혼했었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천착해가면서 자립심을 키우고 자존감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리는데 특별한 공력을 들인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결혼 14년차의 세 아이 어머니이자 현재 남편과 함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살고있는 작가 유씨.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간관계에 있어 자신만의 고리를 잃고 하루하루 함몰돼가는 결혼생활은 회의한다"며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결혼을 했건 로맨틱에 흠뻑 취해서 결혼을 했건 간에 아내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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