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막판 협상이 끝내 결렬돼 김형오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이 실제 이뤄진다면 그 처리 절차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직권상정을 통해 법안을 처리하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물리적 정신적 힘이 든다.
직권상정을 위해선 국회의장이 먼저 법안 심사기간을 지정해야 한다.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법안에 대해 '언제까지 심사를 마치라'고 심사기간을 정해야 하고, 그 기간 내 해당 상임위가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에만 본회의에 직접 상정할 수 있다.
심사기간이 지나 본회의를 연 뒤엔 무엇보다 본회의장내 국회의장석 확보가 중요하다. 국회법상 법안 표결 시에는 의장이 안건의 제목을 의장석에서 선포해야 하고, 표결 종료 후에도 그 결과를 의장석에서만 선포토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본회의장 의장석 이외의 장소에서는 법안을 처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소수당 의원들은 다수당이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려 할 경우 '의장석 점거'라는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직권상정을 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어, 직권상정 시 의장석을 놓고 여야간 격렬한 충돌을 배제할 수 없다.
의장석에 국회의장을 앉히려는 한나라당과 이를 막으려는 민주당 의원들의 물리적 충돌이 계속되면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할 가능성도 크다. 171명 여당 의원들만으로는 83명 민주당 의원들을 완벽히 막아내긴 어렵다. 질서유지권이 발동되면 국회 경위들이 투입되고 여야 의원과 경위들이 뒤섞인 볼썽 사나운 난투극이 연출될 개연성이 있다.
여당이 국회의장석을 확보해도 어려움은 또 있다. 전자투표시스템에 의한 법안 표결 과정이다. 국회법상 수십 건의 법안을 '일괄 상정, 일괄 통과' 시킬 수 없도록 돼 있어 법안 한건 마다 일일이 표결해야 한다. 즉 여당 의원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법안마다 일일이 찬성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물리력으로 투표 저지에 나설 경우 표결을 제대로 마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 한나라당은 30여개의 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적 상황에서도 30여개 법안처리에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는 와중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키도 어렵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1일 잇따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의 물리적 저지를 봉쇄하기 위한 역할 분담 방안 등을 숙의했다. 본회의장 지도까지 보며 역할별로 조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직권상정을 통한 법안처리는 물리적으로도 여야 모두에게 힘들고 부담스런 일이다. 막판 극적 타협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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