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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독립유공자들/ 최고령 독립유공자 구익균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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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독립유공자들/ 최고령 독립유공자 구익균 옹

입력
2009.03.03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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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자리한 '낙원빌딩'. 지은 지 30년이 지난 이 아파트 15층에 국내 생존 최고령 독립유공자인 구익균 옹이 산다. 1908년 3월14일 생이니 다음 달이면 101세가 된다.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1928년 신의주고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경에 체포됐다가 풀려났으며 이듬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1932년까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27일 구 옹을 찾았을 때 한쪽 벽에 걸린 도산의 영정이 첫 눈에 들어왔다. 책장 위에는 '島山 安昌浩 革命思想硏究院'(도산 안창호 혁명사상연구원)이라 새긴 목판이 놓여 있었다. 구 옹은 15평짜리 아파트 중 작은 침실이 딸린 방 하나를 얻어 2006년부터 이 연구원을 운영하며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작은 공간이 그의 삶의 터전이자 '도산 정신'의 명맥을 잇는 둥지인 셈이다.

"민족의 이익을 위해 진보적인 요소도 포용할 필요가 있어. 현 정부는 통일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보수적이야. 6자 회담으로 체면은 유지했는데 그 동안 쌓았던 신뢰관계가 최근 원점으로 돌아갔으니까니…." 취임 1주년이 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조언을 묻자 3분 가량 생각에 잠겼던 그는 짙은 평안도 사투리로 말문을 열었다.

보청기를 했을 뿐 그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한 구 옹은 독립운동 당시 회상은 물론 최근 정세에 대한 견해도 막힘 없이 풀어냈다. 하긴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신사상에도 해박해서 스물 한 살에 도산의 비서실장으로 '특채' 됐던 그다.

구 옹은 4시간의 인터뷰 내내 도산의 포용력을 강조했다. "도산은 민족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이렇게 나누지 않았어. 1930년에 결성한 대독립당도 김원봉, 김두봉 같은 이도 다 포섭했지. 도산은 사람들은 각기 장점이 있으니 쓰일 데가 있다고 했어." 그러면서 백범 김구 선생이 약산 김원봉 등 사회주의자를 광복 이후 귀국 길에 데려오지 않은 것을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임정 세력이 반으로 꺾이고 친일 세력에게 기회를 주게 된 거지. 한국 정서에는 백범, 약산 둘 다 있어야 되거든."

상하이 흥사단 시절을 얘기하던 구 옹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혜원이라고 있었어. 위혜원. 다른 사람들은 노래만 부르는 그를 '딴따라'라고 외면했는데 도산은 그 사람 기타치고 노래하는 거 칭찬하고 '희락회' 활동에 앞장 세웠어. 나중에 혜원이 코라스(합창단)도 만들고 나도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운 거야." 하지만 이내 "죽고 다 없어. 나 한 사람만 남았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구 옹이 정부에서 받는 연금은 월 220만원. 50만원은 월세로, 100만원은 간병인비로 나가고 70만원으로 생활한다. 결코 넉넉지 않은 살림이건만 그는 "미안할 정도로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 '도산의 자립 정신'을 따라 자녀들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광복 이후 '오파상'(무역상)을 하면서 꽤 큰 돈을 모았다. 하지만 백범의 통일독립촉진회를 시작으로 조봉암의 진보당, 통일사회당 등 진보정당의 자금을 대다 보니 남은 재산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광복 직후 백범으로부터 '상해교민 통치권' 위임장을 받아 당시 돈 70만달러로 학도병 탈주병 100여명을 비롯해 상하이 거주 2,000여명의 한국 행을 돕기도 했다.

남북통일을 첫째 소원으로 꼽는 그는 "일생을 독립운동과 혁신정당에 바쳤다. 상하이에 온 이승만이 귀국 후 연락하라고 말했고 5ㆍ16때 김종필씨의 접촉도 있었지만 도산의 뜻에 어긋날까봐 거부했다"고 했다. 공자의 말을 빌려 "吾道(오도)는 一以貫之(일이관지)"(나의 길은 오직 하나로 일관됐다)라고 말하는 최고령 독립유공자의 목소리는 조국 독립의 한 길을 걸었다는 자부심으로 넘쳤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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