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섬세한 연출력과 연기 앙상블로 주목 받았던 극단 전망의 '억울한 여자'(쓰시다 히데오 작ㆍ2001년)가 재공연 중이다. 한적한 지방도시, 동네 사랑방 격인 카페 공간을 중심으로 집단에서 고립되어가는 개인을 98%의 웃음과 2%의 쌉쌀한 슬픔으로 다룬다.
주인공인 요코는 어릴 적부터 타인이나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불화하면서 자주 '억울한' 감정을 느끼며 성장한다. 사회적 가면에 담긴 허위를 거부하는 고지식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타인과의 피상적 관계 뒤에 숨은 인간의 기만과 이기심을 폭로하는 인물이다. 집단 쪽에서 보자면 불편하고 이물스러운 존재인 셈이다.
이 극의 핵심적인 매력은 분명 개성적인 요코 캐릭터 창조에 있다. 관객은 배우 이지하가 연기하는 요코에 대해 사랑스러움과 부정, 동일시와 '거리 두기' 등 이중적 감정을 느낀다.
그녀에 대해 공감했다가 밀어내고, 허용했다가 의심하면서 '내 안의 요코' 또는 집단에 안주하려는 반대편에 선 자신을 인식하기도 한다.
고지식하고 솔직해서 별난 사람, 모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요코 캐릭터가 잘 구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편 다카다 역의 대비된 성격 만들기가 필요하다. 다카다는 '아…, 어…, 글쎄…, …응?' 식의 말을 남발하는 일본어의 일상어법을 구사하는 인물이다.
이는 '적당히 상대방에게 맞춰주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혹은 자기 자신의 뚜렷한 주장이 없는 일본 사람들 특유의 어법을 그대로 연극적인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공연안내 중 '번역의 글' 참조)이다.
초연에서 절묘한 휴지(休止)와 호흡으로 극 전반을 받쳐 주던 다카다 역의 박윤희는 이번 공연에서 절제가 줄고, 감정표현과 누설 면에서 좀 더 직접적이고 격렬해졌다. 카페 주인과 손님들의 은밀한 속물주의적 화음 또한 배우들 개개인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자주 흐트러진다.
이는 재공연이 갖는 속성 때문일 것이다. 관객의 호응과 반응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의 긴장감, 객석과 무대 간의 숨쉬기가 '우연히' 일치하는 순간에 대한 환희와 수줍음이 사라져버려 아쉽다.
3월은 아메리카 선주민의 달력에 의하면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이라 한다. 남은 공연은 고정되지 않고 미묘한 변화 속에서 생동하는 무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시카와 쥬리 번역, 박혜선 연출. 3월 8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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