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농담> 을 처음 읽은 것은 파리에 유학하던 1980년대 후반이었다. 쿤데라는 이미 세계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였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터라 그저 ‘동유럽 출신의 낯선 작가’의 책 한 권 본다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소설의 흡인력이 어찌나 강한지, 역사의 격류 속에 휘몰리는 주인공들의 애달픈 사정들을 좇아가느라고 밤을 꼴딱 새웠다. 농담>
때로 인생이 악의로 가득찬 농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우리를 가지고 놀듯 삶을 비비 꼬이게 만드는 사건은 어쩌면 하찮은 일에서 비롯된다. 연애보다는 공산당 여름캠프에 더 열심인 여자친구를 놀려줄 생각으로 비꼬아 쓴 엽서 한 장으로 인해 주인공은 대학에서 쫓겨나서, 반국가 사범들만 모아놓은 탄광촌 특수부대에 징집된다.
이곳에서 알게 된 여인 루치에 역시 동네 건달들의 잔인한 폭행으로 상처를 입은 가련한 영혼이다. 인생 잘못 풀려 막장에서 만난 두 사람의 남루한 행색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 헤진 루치에의 초라한 코트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특수부대 옷을 입은 총각이 “그대 몸은 가냘픈 이삭이라/ 떨어진 낟알이 싹트지 못하리… 그대 몸은 타 버린 하늘” 하는 슬픈 사랑의 시를 읊어줄 때, 가련한 소녀는 숨 죽여 운다.
기숙사 방에서 열심히 불어사전 뒤지며 소설을 읽어내려가던 초라한 행색의 한국 유학생도 왠지 가슴이 메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사랑했던 것일까? 주인공 루드빅은 그녀를 가슴 깊이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그녀가 느끼기에는 그 역시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성폭행 미수범’에 불과하다. 낯선 고장으로 도망간 그녀를 받아들여 주님의 이름으로 상처를 달래주려던 신심 깊은 인물 코스트카의 사랑은 순수한 것이었을까?
지극한 사랑의 이름으로, 혹은 혁명의 이름으로 했던 일들이 때로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 자신이 잔인한 농담의 대상이 된다. 아, 우리는 모두 서로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는구나. 우리 삶은 슬픈 코미디에 불과한 것일까….
주경철ㆍ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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