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달라붙은 입으로 줄담배를 연신 피워대는 여인 킴(앤 해서웨이)은 언니 레이첼(로즈마리 드윗)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약물중독 치료 재활원을 빠져 나온다.
오랜만에 해후한 가족과 지인들은 모두 그를 반기는 듯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불안의 그림자가 깔려있다. 늘 그랬듯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킴이 언제 또 사고칠지 모른다는, 그래서 결혼식을 망칠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는 문제적 여인 킴이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결혼식을 매개로 자리를 함께한 가족과 지인들은 약물로 얼룩진 킴의 과거에 불안감을 느끼고, 그의 돌출적인 언행 앞에서 당황한다. 그리고 킴 때문에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막내 동생에 대한 악몽이 되살아날까 봐 가슴 졸인다.
한 남녀의 인생의 가장 달콤한 순간에 한 가족의 가장 불행했던 과거가 포개지면서 영화는 시종 긴장감을 유지한다. 킴과 레이첼의 서로에 대한 질투와 연민이 교차하고, 킴의 부모에 대한 원망과 사랑에 대한 갈증이 겹치면서 스크린은 요동친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폭발 직전까지 몰아가는데도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지도, 어정쩡하게 갈등을 봉합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아마추어가 찍은 듯한 거친 입자의 흔들리는 화면은 그저 묵묵히 한 가족의 사랑과 갈등을 담아내며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게 바로 가족"이라고 말할 뿐이다.
마치 이혼이라는 미래의 파국을 막을 수 없으면서도 흥겹게 남녀의 결합을 축하할 수밖에 없는 결혼식처럼 말이다.
등장인물들의 정신적 고통과 혼돈이 관객의 가슴을 누르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재즈와 팝, 포크, 아랍음악 등 경계 없이 펼쳐지는 음악은 작은 탄성을 자아낸다.
특히 비속어를 마다않는 앤 해서웨이의 열연은 대단한 볼거리다. 비록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케이트 윈슬렛에게 뺏겼지만 이제 26세에 불과한 이 여배우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양들의 침묵'과 '필라델피아' 등으로 1990년대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조너선 드미 감독은 65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실험적인 영상으로 건재를 과시한다.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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