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유로(약 2,500원)를 훔친 혐의로 해고 당한 독일의 한 슈퍼마켓 계산원이 경기 침체 속에서 계급투쟁의 희생자로 떠오르고 있다.
슈피겔 등 독일 언론에 따르면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카이저에서 31년 동안 계산원으로 일해왔던 바바라 엠메(50)는 지난해 초 1.3유로의 공병보증금 전표 두 장을 훔친 혐의로 해고됐다. 그녀는 해고 무효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8월 1심에서 패했으며 24일 베를린시 노동법원도 “돌이킬 수 없는 신뢰 위반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엠메는 소송에서 패배했지만 없는 자들의 희생을 대변하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수십억의 돈을 날린 기업과 금융기관의 경영자들이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단 1.3유로를 훔친 그녀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목소리다.
심지어 미국 대선 당시 배관공 조처럼, 9월 독일 총선에서 그녀의 해고가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의 여파로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부각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중지 빌트는 엠메를 표지모델로 내세우고 “세계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뚱뚱한 고양이들이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는데 반해 동전 몇 푼 때문에 평범한 시민이 직장을 잃었다”고 적었다. 정치인들도 엠메를 두둔하고 나섰다.
사민당 소속의 볼프강 티어제 하원 부의장은 베를리너 차이퉁에 “야만적인 판결”이라는 말로 법원을 몰아붙였다. 기사당 당수인 호르스트제 호퍼 바이에른 주총리도 “수십억 유로를 날린 자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1.3유로 때문에 해고될 수 있느냐”고 분노를 표했다.
서민들의 지지는 특히 뜨겁다. 24일 재판 당일 법원 앞에는 수많은 지지자들이 나와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쾰른의 지지자들은 카이저에 들어가 ‘에멜리와의 연대’라고 적은 스티커를 과일과 채소에 붙이며 항의했다.
엠메의 변호인은 엠메가 전표를 훔쳤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이 횡령을 핑계 삼아 노조에 활발히 참여해 온 엠메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카이저의 토비아스 투흐렌스키 사장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 내 카이저 직원 5,000여 명이 모두 매일 1.3유로씩 횡령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며 해고의 정당함을 주장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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