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라 비틀어진 음악시장에서 그나마 수확한 것이 있다면 실력있는 인디 밴드들의 활약이었다. 공장에서 뽑아낸 듯한 기획음악들의 '양념 맛'으로 근근이 유지되어온 가요계는 언니네 이발관, 마이 앤트 메리 등 1990년대 중반 '인디의 전성시대'에서 출발한 팀들의 활약 덕분에 질적인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많다.
기성복 같은 음악에 질린 팬들도 비록 인지도는 낮지만 특이하고 날 것 그대로인 음악을 하는 인디 밴드들에 주목해 이들의 CD를 사는 데 지갑을 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앨범이 1만 장 이상 팔리는가 하면, 시장 확대에 고무된 공중파 TV의 음악방송은 이장혁과 같은 숨겨진 고수를 발굴해내기 시작했다.
올 들어 그동안 숙성 단계를 충분히 거친 인디 밴드들의 정규 첫 앨범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보통 5~6년 이상씩 인디의 쓴맛을 보며 날을 벼려온 이들이라 음악이 범상치 않고 참신함이 귀를 톡 쏜다. 메이저 시장을 향한 출사표를 의미하는 1집을 최근 낸 인디 밴드들을 살펴본다.
'싸구려 커피' 등 13곡 담아… "노래 중심 포크록 앨범"
■ 인디 열풍의 중심 '장기하와 얼굴들'
2008년 인디 열풍의 중심에 섰던 '장기하와 얼굴들'이 27일 정규 1집 앨범 '별일 없이 산다'를 발매했다. 싱글 '싸구려 커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이들이 기존 공개 곡들을 포함해 13곡을 담은 앨범이다.
"노래가 중심이 되는 포크록 음반입니다. 그동안 라이브 영상에서 추출한 불완전한 음원이 돌아다녔던 '달이 차오르다, 가자'가 드디어 정식 음원으로 만들어졌고요. '별일 없이 산다' '말하러 가는 길' 등 좋은 곡들이 담겼어요. 아, 저희에겐 정말 다 좋아요." 신보의 곡 중 특별히 애정이 가는 것들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장기하는 "빼놓을 게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지난해의 싱글은 사실 1집 작업의 중간결과물이라 할 수 있어요. 1집에 처음 실리는 곡들도 지난해 초부터 작업이 진행되었던 것들이죠. 그러다 가을에 갑자기 공연이 많아지며 작업이 지연됐고 이제서야 1집이 나온 것입니다."
1집에 다시 담긴 싱글앨범의 곡들도 편곡이 새로워 다른 느낌이 강하다. 그래도 읊조리듯 쏟아내는 한국적 랩과 재치있는 가사는 여전하다. 장기하는 "싱글이 포크음반에 가까웠다면 1집은 록 음반에 가까워요. 미미시스터즈의 역할에 대해 궁금하실 텐데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의 라이브에서 그들의 새 안무를 보실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록으로 정면승부… 담배·낮술 등 주류음악 기피 소재도
■ 떠오르는 신예 '국카스텐'과 '타바코쥬스'
지난달 말 정규 첫 앨범 '비포 레귤러 앨범'을 낸 '국카스텐'은 '2008 인디 뮤직 페스타'에서 대상을 받고 올 펜타포트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에 출전하는 자격을 받아낸 실력있는 밴드이다.
펑크에서 헤비메탈, 모던록을 오가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며 내공을 다져온 이 4인 밴드의 첫 앨범은 역시나 다양한 시도로 가득하다. '바이올렛윈드' '파우스트' 등 12곡으로 꽉 채운 앨범엔 중국만화경('국카스텐'의 의미)에서 보여지는 불꽃놀이의 이미지들이 점멸한다.
이전 싱글 앨범을 "200장 정도 팔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던 이들이 보여줄 록의 정면승부가 기대된다. 공연무대에서 이들의 사운드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약간은 잠잠해졌다는 기분도 들것이다. 그래도 사이키델릭의 강도는 진하다.
'국카스텐'과 비슷한 시기에 정규 1집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를 낸 '타바코쥬스' 또한 홍대 앞에서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인디 밴드. 4명으로 이뤄진 이 팀의 첫 앨범엔 담배, 버러지, 요다, 낮술, 좀비 등 주류음악에서 기피할 수밖에 없는 소재가 가득하다.
망가져버린 희망을 앞에 놓고 쓴 잔을 들이켜며 들어야 할 것 같은 가사와, 상대적으로 발랄한 리듬과 멜로디는 쓰디쓴 담배와 달디단 주스를 섞어놓은 듯 기묘하지만 낯설지 않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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