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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섭(統攝)? 통섭(通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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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섭(統攝)? 통섭(通涉)!

입력
2009.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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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알라모스 연구소는 원자폭탄 개발을 성공시킨 비밀 연구조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집합소였다고 한다. 여기서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여러 분야 과학기술자들의 연구 성과가 한 가지 커다란 목표로 수렴되는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인 과학이 행해졌다.

통합ㆍ수렴과 분산ㆍ소통

1984년 이 연구소에서 일하던 정상급 과학자들이 자발적 의지로 그 근처에 세운 산타페 연구소는 이와는 전혀 다른 과학을 지향한다. 먼저 붙박이로 일하는 상임연구원이 없다. 행정요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연구자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간 머물면서 일하는 방문연구원이다. 연구자들의 전공도 이론물리학과 분자생물학에서부터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면역학, 생태학, 컴퓨터 공학, 인공생명, 심리학, 경제학,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모든 연구는 전공 구분 없이 진행된다.

전자가 통합과 수렴의 과학이라면 후자는 분산과 소통의 과학이다. 로스알라모스의 연구 '성과'는 비밀에 부쳐진 채 가공할 위력의 핵무기가 되었지만 산타페의 연구 '경험'은 연구자들의 가슴에 담긴 채 사방으로 퍼져나가 다양한 연결망을 구성한다. 연구소는 그 연결망을 이용해 뭔가 도모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연결망을 구성하는 연구자만이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 연구소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연구했던 연구자는 본래의 자리에 돌아가서도 그 경험을 살려 자신의 연구에 그 연결망을 활용한다. 때로는 유전자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자와 주식가격의 변동을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한 팀이 되기도 하고, 여러 생물 종의 관계를 연구하는 생태학자가 신경세포의 연결망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새로움은 주어진 임무에 맞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의 연결망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출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학문 사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제(學際) 연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통섭(統攝)이란 말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여러 학문 분야 간의 협동연구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연구지원제도가 시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별로 없어 보인다. 각 분과 학문, 특히 과학과 인문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공동연구로 포장된 연구도 사실은 같은 주제에 대한 개별 학문의 주장을 나열한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진정으로 상대를 자신 속에 섞지 못했고 따라서 섞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분과 학문들이 진정으로 서로 섞이지 못하는 책임의 일부가 통섭(統攝)의 잘못된 유통에 있다고 본다. 이 말은 발음이 같은 통섭(通涉)과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통섭(通涉)은 '사물에 널리 통함' 또는 '서로 사귀어 오감'이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에서 말하는 통섭(統攝)은 학문 간의 소통이나 사귐과는 거리가 멀다.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도 생물학의 한 분과로 편입되어야 하며 생물학이 그 모든 것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섭(統攝)은 사회생물학적 '주장'을 담은 책의 제목으로는 적절하지만 학문 사이의 '소통'을 뜻하는 용어로는 부적절하다. 소통을 말하면서 사실은 지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학문간 소통과 사귐을

최근 학문 분야의 소통을 더 어렵게 하는 일이 있었다. 학문연구 지원을 위해 마련된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 개편안이 발표되었는데 특정 분야에 속하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통섭(通涉)을 추구하는 '복합학'이 분류에서 빠져버린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학문들 사이의 벽은 더 높아지고 과학기술사, 과학사회학, 생명윤리학, 의철학(醫哲學), 의사학(醫史學) 등 그야말로 학문들 사이를 이어주는 학문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통섭(統攝)보다 산타페의 통섭(通涉)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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