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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유별난 내 아들…수능 끝나고 며칠 연습한 후 운전면허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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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유별난 내 아들…수능 끝나고 며칠 연습한 후 운전면허 따

입력
2009.03.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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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별난 탓에 수없이 가슴을 쓸어 내리며 키운 아들이 드디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의 화려한 활약상은 차치하고도 지난 1년 동안에 벌인 사건만 해도 책 한 권을 쓸 정도였기에, 무사히 졸업한 기념으로 묻어두었던 이야기나 풀어볼까 합니다. 워낙 공부를 싫어하고 못했지만 뚜렷한 재능도 없어서 그냥 남들처럼 공부하고 제 능력에 맞는 안전한 직장이나 잡아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 녀석은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방대지만 원하는 '자동차기계공학부'에 수시합격을 하게 되자, 수능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보쌈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공부할 때는 그렇게 못 일어나던 녀석이 하루 6~7시간씩 일하고 밤 12시가 넘어 끝나 들어와도 신이 나더군요.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자 했더니, 두 달해서 150만원 정도 번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겠다며 그만 두더군요. "오토바이는 절대로 안돼! 차라리 호적을 파서 나가"하며 며칠을 싸웠더니 "그럼 스키보드 장비를 사겠다"고 하더군요. 오토바이보다는 덜 위험하겠다 싶어 허락을 했지요. 기다렸다는 듯 당장 사오더니 새벽 6시에 집 근처에서 떠나는 스키장 셔틀버스를 타고 몇 번을 다녀 오더라고요.

그러더니 어느 날 느닷없이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붙었다고 실기코스 연수비를 내달라고 하더니, 3일 연습하고는 코스 붙고 주행 기본 10시간을 받자마자 합격했다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하여튼 수고했다"고 엉덩이를 두들겨주며, "공부를 그렇게 쉽고 재미있게 했으면 얼마나 예뻤을까?" 했더니 그냥 웃더군요. 저는 "그래, 앞으로 운전하게 되면 조심하거라" 하고는 무심코 지나갔는데, 남편은 면허증을 보더니 "너 원동기 면허는 또 언제 땄냐?"고 묻더군요. 깜짝 놀라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그럼 엄마는 내가 무면허로 오토바이 타기를 바랐어요?" 하고 오히려 당당해 하더군요.

수능시험이 끝난 날, 저녁 먹으며 남편이 아들에게 술을 주며 "먹을 때까지 먹어보라"고 했더니 소주 2병까지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너, 학교 다니면서 오토바이 타고 술까지 먹었냐? 혹시 담배도 피니? 엄마가 모르는 게 또 뭐가 있니?"했더니 "그럼, 엄마가 아침에 해장국 끓여 준 날은 내가 술 먹고 들어와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담배는 한 번 피워봤는데 몸에서 안 받아서 안 하기로 했어요" 하더군요. 기가 막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애가 술 먹고, 담배 피고,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다 사고쳤다며 속상해 할 때도 난 "우리 아들은 공부 못하는 거 말고는 말썽 피우는 것은 없지요"라고 자신있게 말해왔는데…. "아유, 창피해.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 엄마를 얼마나 흉봤겠니?" "엄마, 걱정 말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뭐 아직 아들을 제대로 모르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을 거에요." "그럼 지난번 축구 하다 다쳤다는 것도, 그것도 오토바이 타다가…?" "그렇죠. 아빠랑 누나는 대번에 알던데…."

아침에 일어나니 식탁 위에 쪽지가 놓여있었습니다. '엄마. 새벽에 아파트 한바퀴 돌며 운전연습 좀 했는데 다른 차가 그 자리에 있어서 지하에 주차했어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깜짝 놀라서 내비게이션의 최근검색 목록을 찾아보니 '홍대근처, 임진각, 지유로, 마두역…' 등이 마구 찍혀 있었어요. 몰래 운전할까 봐 가족보험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감히 새벽에 차를 끌고 돌아다닐 줄은 몰랐지요.

또 그럴까 봐 차 키를 침대 머리맡에 감추고 잤더니 다음 날은 그러더군요. "차 키를 왜 숨겨요? 우리 신사적으로 그러지 맙시다"하며 능글맞게 웃더라고요. 남편이 아침에 "저 녀석 어젠 새벽까지 TV 보고 늦게 자더라" 하더니만, 사실은 TV를 켜놓고 살짝 나가서 운전하고 돌아다니다 들어온 것이었지요. 일부러 타이어를 옆으로 돌려놓고 주차한 뒤 다음날 아침에 보면 차가 제자리에 그 모양대로 있어서 안심했는데 사실은 차를 끌고 나갔다가 똑같이 주차를 시켜 놓았던 거지요.

일찍 들어오라고 전화하면 대답은 시원스럽게 하지만 새벽신문과 함께 들어옵니다. 그리곤 무조건 "새벽 1시쯤 들어왔다"고 하기에 넘겨짚어서 "CCTV에서 확인했는데?"했더니 "와, 엄마. 이젠 별거 다하네요. 그래요, 4시에 들어왔어요" 합니다. 나가는 녀석 등 뒤에다 대고 "아들, 오늘은 몇 시?"하고 물으면 "묻지 마시고 그냥 CCTV 확인 하세요"하며 건들거리기도 하고요. "당구장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고 당구 실력을 키워 대학가서 점심 값은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질 않나, 참 여러 가지로 어이가 없게 합니다.

그래도 아빠가 술 드시는 날이면 버스타고 아빠 사무실까지 가서 차를 갖고 들어오고, 누나가 전철역이나 버스 정거장으로 데리러 나오라면 군말 없이 차로 데리고 오고, 이모네 가족이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가게 되면 아예 차를 가지고 오시지 말라 하고는 술 드신 이모부네 가족을 모셔다 드립니다. 도대체 길을 어찌 다 아는 건지, 그 동안 얼마나 몰래 차를 끌고 돌아다녔던 건지….

대학에 입학도 하기 전에 '신체검사' 용지가 나오더군요. 그걸 보더니 제 누나가 말합니다. "참, 우리나라도 답답하기는…. 저런 애를 데려다 어디다 쓰려고 이런 걸 다 보낼까? 사람 만들려면 꽤 힘들 텐데…." 말썽 피우고 맘에 안 들게 행동할 때마다 "빨리 군대나 가서 정신 차리고 나와라"하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막상 용지를 받고 나니 마음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들 두신 부모님들. 자는 아들 다시 보고, 자동차 키 확인하세요. 겪어보니, 안 그러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도 있더군요. 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원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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