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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다시마 먹여 키운 전복… '푸른 바다의 속살' 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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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다시마 먹여 키운 전복… '푸른 바다의 속살' 한입

입력
2009.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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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의 노화도, 보길도는 완도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섬이다. 청정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황금같은 보물들 때문이다. 김이며 미역이며 다시마, 톳 등 이곳서 길러진 해조류는 청정의 프리미엄이 더해져 팔려나간다. 노화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이목항은 그 풍요가 풀어놓는 흥겨움에 '작은 목포'라 불리고 있다.

요즘 노화도와 보길도의 최고 효자상품은 전복이다. 전국 전복 생산량의 90% 이상을 완도가 담당하는데, 그 완도 전복의 60% 이상이 노화도와 보길도 해안에서 생산된다.

지난해 개통된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 위에 올라서면 두 섬 사이 좁다란 바닷길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네모 반듯한 전복 양식장을 볼 수 있다. 바다에 일군 전복 밭들이다.

패류 중에서 가장 맛이 좋고 귀하다 해서 '패류의 황제'로 일컫는 전복.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이 강장제로 애용했다던 음식이다. 워낙 귀해 임금님 진상품으로나 바쳤고, 비싼 값 때문에 서민들은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식재료다. 이 전복이 양식을 통한 대량생산으로 이젠 생활 속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전복은 영양이나 맛에서 여타 해산물을 압도한다. 특히 단백질과 비타민 외에 칼슘, 인 등 미네랄도 풍부해 영양만점의 건강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이 좋은 전복이 왜 완도에서만 90% 넘게 생산되는 걸까. 전복의 먹이를 살펴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전복은 미역과 다시마 등 해초를 뜯어 먹고 산다. 완도는 이미 해조류로 유명한 곳. 노화도의 전복 양식장을 보면 대부분 전복 양식장 바로 옆에 미역이나 다시마 양식장이 붙어 있다. 양식업자는 크레인으로 바다에서 건져낸 미역 등을 바로 옆 전복 양식장에 집어 넣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료가 필요 없다. 이들 미역, 다시마는 그 자체 상품으로 내다 팔아도 훌륭한 품질이다.

일본인들이 완도 전복 양식장을 시찰했을 때 "사람 먹을 것으로도 모자란 저 미역, 다시마를 전복 먹이려 키우느냐"며 놀라워 했다고 한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노화도와 보길도는 두 손을 둥글게 마주한 듯한, 딱 전복의 속살 모양이다. 섬 사이 기다란 바닷길은 언제나 강처럼 잔잔하다. 이 물길이 전복 양식장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완도에서 16년 전 처음 전복 양식을 시도해 성공시킨 곽승호(52)씨는 "처음 전복 양식에 뛰어들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고 했다. 양식 기간이 최소 3,4년 걸려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는 미역과 다시마 등 전복의 먹이가 충분하다는 이점을 살리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밀어붙였고 결국 성공시켰다.

지금도 전복을 키우는 어민들은 평균 가구당 수익이 연간 1억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노화도는 그래서 노인들만 남은 여느 시골과 달리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아기 울음소리도 그치질 않고 있다. 지난해 완도군의 총 수산물 매출액은 5,500억원인데 이중 2,500억원을 전복 하나로 달성했다.

전복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전복죽이다. 귀하디 귀한 식재료이다 보니 잘게 썰어 죽이라도 쑤지 않으면 여럿이 맛볼 수가 없었기에 고안된 음식일 게다. 곽씨에게 가장 맛있는 전복 요리를 물었더니 그냥 회로 먹는 것을 제일로 쳤다. 오드득 씹히는 날전복의 질감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전복을 껍데기채 굽거나 데치면 살은 살짝 오그라들면서 훨씬 보드라워진다. 천양숙 완도군 여성단체협의회장은 "완도 사람은 초상을 치르는 등 밤새는 일이 생기면 닭죽 대신 전복죽을 쑤어 먹고, 여름철엔 전복을 총총 썰어 시원한 냉국이나 물회를 만들어 먹으며 더위를 달랜다"고 말했다.

멀리서 손님이 찾아오면 완도 주민들은 전복쇼를 보여준다. 칼 대지 않은 생전복에 소주 몇방울 떨어뜨리면 속살이 민망하게 비비 꼬며 춤을 춰댄다. 사람이나 전복이나 취하면 흐느적거리는 게 똑같다.

소주를 담은 주전자에 생전복을 통째로 넣어 한참을 우려내면 술에서 초록빛이 묻어난다. 전복을 안주로 했을 때 가장 잘 어울린다는 전복주다.

전복을 껍데기에서 도려내면 삼각뿔 모양의 내장이 남는다. 녹색은 암컷의 것으로 알주머니이고, 노란색은 숫놈의 것으로 정소주머니다. 전복의 향을 진하게 품고 있는 전복 맛의 하이라이트로 그냥 떼어 버려선 안 된다. 이들을 넣고 끓여야 전복죽도 초록빛의 제 색깔이 살아난다. 단 알주머니와 붙은 창자 속의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전복 먹이는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전복의 속살을 떼어내는 데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 무작정 칼을 들이민다고 떼어지지 않는다. 도구로는 칼보단 수저가 낫다. 수저를 살과 껍데기 틈에 끼우고 살살 돌려가며 떼내야 딱 떨어진다. 단, 수저를 넣을 때 껍데기의 둥그스름한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

완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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