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그 것도 아주 불편한 '진실의 순간(a moment of truth)'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 세계체제로 정착시킨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 30년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다. 작년 9월 터진 금융위기가 임시방편으로 봉합 되자, 그 밑에 감추어져 있던 세계적 차원의 실물 불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가쟁명'이 답을 찾는 길
단적으로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소비는 경제성장률의 2배를 넘는 수준으로 증가하고 민간부문의 저축률이 사실상 제로가 되는 상태로 가계부실이 악화되었다. 미국사람은 열심히 소비하고, 중국인은 미국에 수출해 얻은 소득으로 열심히 저축해 미국에 빌려주고, 그 돈이 미국 집값을 올리고 미국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계속 소비를 하는 잘못된 구조가 파탄 난 것이다.
이 2차 실물위기 국면에서는 금융위기의 진앙지보다 한국, 대만, 일본 같은 고가 내구재와 자본재를 수출하는 국가에 예상을 뛰어넘는 타격을 주고 있다. 중국 같은 저가 생필품 수출 국가는 차라리 타격이 적다. 2차 실물위기는 다시 3차 금융위기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2월의 경우 대만의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무려 41.9% 급감했고, 일본은 20.6%, 한국은 17.9%가 줄었다. 작년 4분기 3개월 동안 한국의 수출은 11.9%, 성장률은 전년에 비해 3.4%나 뒷걸음질쳤다 미국, 영국 같은 금융 위기국보다 훨씬 큰 타격이다. 한국경제는 본격적인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위기대책 자체보다 공론의 활성화이다. 사회 여론을 주도해야 할 언론이 이 부분을 놓친 듯 하여 걱정스럽다. 공론의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위기를 일본의 1990년대 불황이나 30년대 세계 대공황에 비교한 연구도 있으나 결론은 전대미문의 위기이다. 무엇보다 기업이 아니라 가계가 금융위기의 중심에 말려들어 소비여력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작년 미국 가계의 자산가치 감소액이 GDP의 50%에 이르러 급격한 소비 위축은 불가피한 처지인데 교과서에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없다.
대공황 이후 경제학에 많은 이론 발전과 경험 축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주류경제학계에서 위기를 예측한 경제학자는 없다. 아쉽지만 경제학은 아직 과학의 예측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과연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어떤 대책이 유효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의 고백이다. 이럴 때는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 이 답을 찾는 길이다. 단순한 위기 대책을 넘어 시스템 개혁이 절실한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둘째는 어떤 답을 발견한다 해도 정책의 신속한 시행으로 성과를 얻으려면 일반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든 정책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가져오며 그것들을 특정 집단에 몰아서 부담시키려 하면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비용발생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공평한 분담의 틀에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론화는 이 조건을 확보하는데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다.
사회적 논쟁 억제는 위험
미네르바가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으나 구속조치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
훼손은 차치하고 공론화를 억누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정책 제안에는 하루에도 수만 건의 접속과 댓글이 달릴 정도로 논쟁이 뜨겁다. 우리는 너무 조용하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성장률 예상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정부가 세계 조류와 다르게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걱정스럽지만, 공론화를 위축시키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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