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모이면 은연중에 그 사람의 전직이 드러나곤 한다. 한 선배의 병 따는 솜씨는 경탄을 넘어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는 라이터나 숟가락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걸로(병따개만 빼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수많은 병들의 뚜껑을 딴다. 이 병에서 저 병으로 옮겨가는 동작의 시퀀스가 환상적일 뿐 아니라 그 소리 또한 병뚜껑에서 나는 소리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울림이 깊다. 병에서 날아가는 병뚜껑을 자신이 지목한 사람들 앞으로 날리는 기술까지 있다.
이쯤 되면 병 따기에서 새로운 권법 하나 나올 만하다. 그는 젊은 시절 지방의 술집에서 웨이터 생활을 오래 했다. 지금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데스티네이션, 서울' 전을 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씩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선정해서 신예 디자인을 발굴하는 프로젝트이다.
최종 선발된 작품은 정식 상품으로 출시되어 모마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팔리게 된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된 헌옷으로 만든 인형과 플래카드로 만든 가방 등 다양한데 그 중 숟가락 병따개가 눈에 띄었다. 숟가락으로 병을 따는 남자들 모습에서 연상했을 그 병따개를 보는 순간 아름다운 디자인이란 먼 곳이 아닌 우리 생활 속에 있다는 생각과 함께 병을 따며 술집 안을 돌던 그 선배가, 그 선배가 쓴 아름다운 문장들이 떠올랐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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