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고독이라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하느님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그러시겠지? 아마, 죽고 나면 자네나 나나 하나일꺼야. 내가 죽으면 자네 꿈에 나타나서 꼭 가르쳐주겠네."
고 김수환 추기경의 투병 과정을 지켜본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고찬근(49) 신부가 투병기를 김 추기경 홈페이지의 추모게시판에 올렸다.
투병 중에 있었던 일과 느낌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 가운데 발췌한 것으로, 김 추기경의 마지막 나날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고 신부는 김 추기경의 은퇴 후 거처였던 혜화동 주교관에서 수년간 함께 생활했던 인연으로 김 추기경의 병상을 자주 찾았다.
고 신부는 지난해 7월 1일자 일기에서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시냐고 여쭈니, 한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신다고 하셨다"면서 "추기경께서 이렇게 계셔서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씀 드렸더니 당신이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셨다"고 적었다.
김 추기경이 호흡 곤란으로 위독했던 지난해 10월 4일자 일기에서 고 신부는 "하루 종일 깨어나지 못하셨다. 종점을 향해 달리는 낡은 기관차처럼 거칠게, 힘겹게 숨을 몰아쉬셨다. 오늘이 마지막인가? 밤 11시 30분경 추기경님이 눈을 뜨셨다. '아야, 아야!' 온몸이 아프다고 호소하셨다.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요"라고 썼다.
또 11월 13일에는 김 추기경이 변비와 배변 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전하며 "달 이야기를 꺼내니 추기경님은 명동 종탑에 걸린 달이 또 보고 싶다 하셨다. 교구청 숙소 중에서 지금 제가 쓰는 꼭대기방이 종탑 보기에는 제일 좋다고 하셨다"고 적었다.
김 추기경 선종 이틀 뒤인 18일, 고 신부는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지만 병원을 눈앞에 두고 선종 소식을 전화로 들었다. 멍해지는 느낌이었다"라면서 "돌아가시자 마자 각막 적출 수술이 시행되었다. 집도한 의사 말씀이 연세에 비해서 각막이 깨끗해 앞 못 보는 두 사람이 앞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썼다.
고 신부의 기록에서는 이밖에도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힘들게 식사를 하고, 옛일을 회고하는 등 선종을 앞둔 김 추기경의 애잔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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