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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눈물의 은사(恩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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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눈물의 은사(恩賜)

입력
2009.03.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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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나. 지난 16일 그분이 돌아가시고 5일장을 치르는 동안 40만의 추모인파가 몰렸던 '김수환 현상'의 실체는 무엇일까. 추모인파가 물러간 고요한 명동성당에서 그런 질문과 마주쳤다.

김수환 추기경이 나라를 생각하며 계속 관심을 가졌던 것 중의 하나는 리더십이었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이나 민주화 이후에나 한결같이 각계 지도자들에게 정의롭고 국민을 섬기고 사회를 통합하는 리더십을 강조해 왔다. 때로는 정권과 맞서 싸우고, 자신의 지지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매섭게 비판하던 추기경의 용기는 이런 신념에서 나왔다.

김수환 추기경의 감동적 리더십

김수환 추기경이 나에게 처음 전화를 하셨을 때의 화제도 리더십이었다. 1984년 5월 5일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 및 103위 시성식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는데, 대회가 끝나고 수십만 신자들이 떠난 광장에 휴지 한 장 버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을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어린이날 인파가 몰린 유원지마다 쓰레기가 쌓여 신문 방송들이 일제히 그 대조적인 모습을 보도했다.

당시 '여기자 칼럼'을 연재하고 있던 나는 '군중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그 이야기를 썼다. 여의도 신앙대회에서 휴지를 안 버린 천주교 신자들은 유원지에 놀러 가서도 안 버릴까. 두 군중의 차이는 무엇일까…등의 내용을 담은 칼럼이었다. 추기경은 일반 독자처럼 스스럼없이 전화를 걸어 '군중의 두 얼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더 듣고자 하셨는데, 내가 신통한 이야기를 못 하자 "리더십의 차이가 군중의 차이를 만들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리셨다.

그 후 추기경은 가끔 전화로 나의 칼럼에 대한 의견을 주셨고, 한국일보의 평생독자가 되어 주셨고, "뉴스의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 한국일보의 중도적인 논조가 도움을 준다"는 말씀도 하셨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세상을 위해서 그 무엇을 해야 한다"면서 한 치 앞이 안보이던 암울한 시절 등불을 들고 앞장섰던 추기경은 어느덧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국가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존재는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었다.

장례기간 동안 명동성당에서 추기경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줄지어선 사람들은 3~4시간씩 강추위를 견디면서 전혀 힘든 모습이 아니었다. 조용한 기다림 속에 절절한 사랑과 존경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성당 안 유리관 속에 '작은 노인'의 몸으로 누워 있는 추기경을 만나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기쁨과 감사로 빛났다. 추기경의 선종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리더십을 새삼 확인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글과 인터뷰, 일기 등을 모은 책에서 '눈물의 은사'라는 글을 읽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도 베드로가 수난하시는 주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통절히 울었던 것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도 주님을 거슬러 지은 죄에 대해서 그렇게 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령쇄신 기도회에서 내게는 다른 은사(恩賜)보다 '눈물의 은사'를 주십사고 기도한 적도 있다. 그래서 그 은사를 조금은 받은 것도 같지만 아직 내 마음은 돌처럼 굳어 있다.…>

우리 지도자들이 울 수 있다면

김수환 추기경이 71세 때 쓰셨던 이 글을 읽고 나니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김수환 현상'이 '눈물의 은사'였구나 깨닫게 된다. 정의롭고 따뜻하며 수수하고 명쾌했던 추기경, 87년의 생애에서 자신의 시대와 직분에 최선을 다했던 지도자를 우리는 잃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그의 고별사를 새기며 우리 모두 '눈물의 은사'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눈물의 은사'로 우리의 지도자들이 울 수 있게 하고, 증오와 대결로 돌처럼 굳어버린 우리 사회를 녹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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