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될 모양이다. 이른바 녹색성장 때문이다. 녹색과 성장이 근본적으로 양립 가능하냐는 질문부터, 녹색성장의 기본 개념과 실체가 정확히 뭐냐는 질문, 그밖에 다양한 질문과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녹색과 연관 있는 정부 정책 또는 국가 시책은 예전에도 적지 않았다. 얼른 떠오르는 것이 녹색혁명이다. 식량 자급 달성을 목표로 다수확 통일벼를 개발해 농촌에 대거 보급하고 장려했던 정책이다. 1978년 5월 농촌진흥청 구내에 녹색혁명 성취탑이 건립될 정도였다.
새마을운동의 대표 색상도 녹색이다. 녹색의 세 잎이 그려진 새마을운동 표장(標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 잎이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을 상징한다고 하던가. 농촌 마을마다 녹색 새마을 깃발이 펄럭였고, 새마을 모자 쓴 농부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빅뱅 멤버 대성이 콘서트에서 새마을 모자를 쓰고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던가.
그런가 하면 학원 녹화사업도 있었다. 학교에 나무를 많이 심어 푸르게 가꾸는 사업이 아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입대시켜 일종의 전향을 강요하는 사업(?)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보안사가 82년부터 84년까지 강제징집자 900여명과 운동권 출신 정상 입대자 300여명을 '좌경오염 방지' 명목 하에 '사상 순화'시키고, 심지어 그 일부를 대학가 첩보 수집에 활용하면서 사용한 위장명칭이다.
그러나 대략 1990년대 이후부터 녹색은 대체로 시민운동 세력이나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이들, 기성 질서에 대해 비판적인 시민이나 지식인들의 색상이었다. 1991년에 창간돼 지난해 100호를 넘긴, 생태환경 문제를 다루는 교양지 <녹색평론> 이 그런 측면의 녹색을 대표한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얼마 전 모 신문 칼럼에서 "원래 녹색이란 성장과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뉴딜이나 녹색성장은 성장 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말장난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녹색평론> 녹색평론>
녹색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유력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친환경적 기업 이미지나 상품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녹색이나 '그린'(green)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사용된다. 마케팅에서도 이른바 녹색마케팅 또는 그린마케팅 개념이 주목 받은 지 이미 오래다. 기업이 환경보호에 앞장서면서 제조나 판매 과정에서도 환경파괴 방지 노력을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노력이다.
이렇게 볼 때 녹색은 단지 하나의 색상이 아니라 역사이자 가치이며 문화다. '녹색'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녹색의 이미지와 의미가 있다고 하면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녹색이라는 한 마디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적, 가치적, 문화적 더께가 켜켜이 얽혀 있다.
그렇다면 녹색 이미지를 정책기조로 삼고자 하는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해진다. 녹색성장 관련 정책을 나열하기 전에 하나의 문화이자 담론으로서의 녹색, 이야기로서의 녹색에 대한 세밀하고 종합적인 접근이다. 국민은 또 하나의 진부한 녹색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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