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펠리시아노(F.Feliciano) 필리핀 대법관의 초청으로 마닐라를 다녀왔다. 한때 아시아를 주도하던 국가였던 필리핀을 처음 방문하는 길이라서인지 세 시간 반의 비행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이틀간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서신으로만 의견을 주고받던 국제법의 대가 펠리시아노 대법관 및 필리핀국립대학 법학교수들과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필리핀 교수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매우 부러워했다. 요즘 한국 기업들이 필리핀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그런 느낌을 가중시킨 것 같았다.
우리 경제발전이 부러운 그들
한국도 급속한 경제발전 이면에 가려진 문제점이 적지 않다고 하자, 그들은 한 목소리로 경제발전 자체보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 한국사회의 역동성이 부럽고,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들은 또 지금의 필리핀 사회에서 한국과 같은 생동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고 했다. 한때 한국보다 잘 살았고 국제적 지위도 높았던 필리핀이 한국에 추월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은 다음날 필리핀국립대학을 방문하여 어렴풋이나마 풀렸다. 필리핀대학은 한때 아시아 최고의 명문대학 중의 하나로 많은 국제적 인재를 배출한 학교이다. 그러나 과거의 명성을 기대하면서 방문한 필자에게 필리핀대학의 캠퍼스가 주는 첫 인상은 오면서 본 필리핀의 여느 거리와 큰 차이가 없었다.
법과대학 건물은 전면의 연구동과 후면의 도서관 및 강의동이 연결된 형태인데, 예전 시골 초등학교같은 칙칙한 전면의 연구동에 비하여 후면의 강의동은 같은 시대에 존재하는 건물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다.
얼른 부학장에게 물어보니 연구동은 1967년 독립 이후 지어진 것이고, 강의동은 1937년 미국사람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순간 두 건물이 필리핀 현대사의 질곡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1930년대 저 정도의 건물과 학문적 인프라를 운영했다면 아시아 최고의 명문대학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같은 시기 조선에 존재했던 경성제국대학이 주로 일본인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음에 비해, 필리핀대학은 필리핀 사람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필리핀 지배는 일면 식민통치를 통한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미국의 식민지배가 가져온 근대화의 기초가 20년도 되지 않아 바닥나자 필리핀은 더 이상 사회 내부로부터 발전의 동력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한때 잘 나가던 필리핀이 주춤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필리핀은 과거를 너무 빨리 잊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현지에서 만난 최고의 교수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총명한 학생들의 능력을 경제사회의 발전 동력으로 연계시키고자 한다면, 필리핀 사회가 하루 빨리 식민통치가 남긴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 믿는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 반영
필리핀의 현재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더욱 수위가 높아지고 공격적이다. 그들은 표면적인 수치를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을 논증하고 있으나, 수치는 맥락을 떠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당시의 사회발전 수치는 식민지배의 당사자들이 만들어 놓은 무자비한 침탈을 위한 인프라를 반영한 것임을 인정해야한다. 강도가 놓고 간 칼도 재산에 포함시킨 격이다. 필리핀 지식인들의 깊은 고민은 '진정한 선진국을 향한 제2의 도약이 과연 기술만의 문제인가'라는 숙제를 우리에게도 남겨준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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