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의 트리플 위칭 데이?
인기 뮤지컬 3편 '지킬 앤 하이드' '햄릿'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가 동시에 막을 내린 22일은 '세 마녀의 날'로 비유할 만했다. 주가지수선물, 지수옵션, 개별주식옵션의 동시 만기일로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는 '트리플 위칭 데이'처럼, 뮤지컬 팬들이 들썩인 날이었다. 배우와 제작진은 물론, 관객도 아쉬운 이별을 고해야 하는 '막공'(마지막 공연)은 다른 날보다 일찌감치 매진되는 공연인 동시에 최근엔 마니아 관객을 중심으로 하나의 의식이자 이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거리 있는 공연 이상의 이벤트
흥행 뮤지컬의 막공은 공연 이외의 볼거리도 풍성하다. 22일 '햄릿'의 막공이 있었던 숙명아트센터 씨어터S는 로비부터 전날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주연 배우 박건형씨의 팬클럽 회원들이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색색의 종이비행기와 배우의 사진을 부착한 감사 떡을 돌렸다.
일부 팬클럽 회원들은 마지막을 기념하는 의미로 한복,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 등 세계 민속 의상을 입고 공연장에 등장했다. 관객들은 종이비행기를 커튼콜 때 일제히 무대를 향해 날려보냈다. 같은 날 '지킬 앤 하이드' 막공 커튼콜 때는 마치 대중 가수 콘서트처럼 형광봉을 흔드는 관객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막공은 한번이 아니다
마지막 공연이라는 말 뜻 대로라면 막공은 마지막 단 1회가 돼야 하겠지만 뮤지컬팬 사이에 막공은 여러 번이다. 주연 배우가 더블 또는 트리플 캐스팅으로 여러 명이 번갈아 서는 경우, 배우별 막공과 최종적인 '총막공'으로 나눠서 이벤트를 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공 이벤트가 여러 날로 확장되기도 한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경우 장기 공연 중이지만 그때그때 인기있는 젊은 남자배우들이 주인공을 맡다 보니 특정 배우가 정해진 기간의 공연을 마칠 때마다 막공 이벤트가 수시로 마련된다. 김재범씨는 지난해 '김종욱 찾기'에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맥주를 마시는 장면에서 보리차를 맥주 대용으로 쓰는 평소와 달리 스태프들이 깜짝 이벤트로 실제 맥주를 준비하는 바람에 대사를 잊을 만큼 당황했기 때문이다.
전 출연진 등장 무대인사는 기본
배우와 연출가를 비롯한 전 스태프가 그간의 수고를 자축하는 의미로 준비하는 무대인사는 최근 많은 뮤지컬 제작진이 막공 때 마련하는 기본 코스다. 마지막 공연에 출연하지 않은 더블 캐스트들은 물론 제작자, 연출가 등도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자리다. 22일 '햄릿' '지킬 앤 하이드'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막공 때도 모두 무대인사 시간이 있었다.
배우들에게도 다시 없을 추억
공연을 반복 관람한 관객들은 막공에서 숨은 재미를 찾기도 한다. 배우들이 장난기를 발휘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 '햄릿'의 경우 막공에 출연하지 않은 더블 캐스트 남문철, 이지훈씨가 여장을 하고 카메오로 등장해 객석이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지난해 공연된 '시카고'의 막공 때는 주인공 록시가 '미 앤드 마이 베이비'를 부르는 장면에 함께 등장하는 남자 무용수 2명이 대본에 없는 젖꼭지를 물고 나왔다. 관객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스태프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 같은 독특함 때문인지 일부 관객은 막공을 특별히 선호한다. 막공까지 '지킬 앤 하이드'를 12번이나 관람했다는 한 관객은 "막공은 마지막이기 때문에 꼭 봐야 하는 병과 같은 '증후군'"이라며 "막공병"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
하지만 막공이 점차 하나의 이벤트가 되면서 거기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불편을 겪는 일도 있다. '햄릿' 막공 현장에서도 무대인사가 20여분이나 계속되자 몇몇 관객이 도중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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