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일 등 각국 정부가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를 문제 삼으면서 스위스 은행에서 해외 고객 예탁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AP통신은 24일 스위스 은행권의 지난해 총 예탁금은 3조8,200억 스위스프랑(약 4,940조원)으로 전년 대비 27% 감소했다고 스위스중앙은행(SNB)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스위스 은행의 예탁금이 이렇게 급감한 것은 해외 개인 고객의 예탁금이 36%나 줄었기 때문이다. 해외 개인 고객은 지난해 스위스 은행에서 모두 3,710억 스위스프랑을 빼내가 6,710억 스위스프랑이 남아있다. 이에 따라 스위스 은행의 해외 개인 고객 예탁금은 1998년 말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해외 기관 고객의 예탁금도 23% 감소해 스위스 은행의 고객 예탁금 감소를 부채질했다.
해외 고객들이 이처럼 스위스 은행에서 돈을 빼는 것은 지난해부터 미국, 독일 등 각국 정부가 고객 정보를 둘러싸고 스위스 은행을 압박하면서 자신들의 개인 정보가 노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AP통신은 "스위스 은행은 그간 고객 비밀주의를 철저히 지켜왔으나 최근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미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고객정보를 넘겨주기로 했다"며 "스위스 은행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던 비밀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페어 스타인브뤽 독일 재무장관도 지난해말 "스위스 정부는 납세를 피하려는 부정적인 재산 은닉을 돕지 말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스위스 은행의 쇠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스위스 2대 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CS)는 지난해 대규모 자산 상각으로 82억 스위스프랑의 순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UBS는 지난해 자산 상각액만 2,260억 스위스프랑에 달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등 각국 정부가 불황에 따른 세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지역의 탈루 세금을 적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비밀주의를 근간으로 번영을 누려온 스위스 은행 산업이 기로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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