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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고생대 마을-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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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고생대 마을-사북

입력
2009.02.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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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미

해발 855m 푯말 꽂힌 추전역에 내려 나의 '폭풍의 언덕'을 찾아갈 때, 그때 그 고갯마루에서는 바람을 불러 어떤 힘을 주물럭주물럭 만들고 있는 풍차 같은 사내도 있었을 테지만 내가 사로잡힌 건 풍차도 바람도 아니고 그걸 품고 기른 5억 8,000만 년 된 막장의 어둠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찾아간 건 '폭풍의 언덕'이 아니라 '폭풍의 무덤'이었던 거지 컹컹 사납게 울부짖는 어둠 속에서 남인수를 좋아하던 아버지 검은 얼굴로 돌아와 유독 가스 탐지를 위해 탄광 속에 둔 카나리아처럼 노래 부를 때 나는 아버지의 희망의 카나리아였는지도 몰라 5억 8,000만 년 된 어둠의 고생대 검은 석탄을 캐낼 때 나 아버지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어두웠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카나리아였지 나 이제 아버지 무덤 앞에서 중얼거리지 아버지 그 두려움을, 불꽃 같은 어둠을 아버지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두려움도, 어둠도 피붙이 같겠지요

'한때는 산업전사라 불렸고 또 한때는 폭도라 불렸던' 우리들의 아버지!

고생대, 그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석탄을 캐내던 아버지들. 남인수의 노래를 좋아하고 카나리아와 사랑하는 딸을 두고 있던 어떤 아버지. 5억 8,000만 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이 누적해놓은 기억을 파내면서 일상의 먹이를 벌던 눈물 겨운 아버지들.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아버지는 이십여년 전에 세상을 떠나갔다, 이국에 살면서 마흔 중반으로 접어든 나는 감기만 걸려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그 날들이 생각난다.

안현미 시인은 유독 가스 탐지를 위해 탄광 속에 두었던 새가 자신이 아닐지라고 묻는다. 그 물음 뒤에 시인은 그 두려움을 불꽃 같은 어둠을 피붙이같이 여기리라고 적는다. 그렇지 않았을까? 불우한 세월을 겪은 부모들을 둔 우리들이 그 어려운 세월을 떠올릴 때,

그때마다 떠오르는 한없이 어두운 아버지의 얼굴, 혹은 전세대들의 얼굴. 애증으로 뒤얽힌 심정으로 그 세대를 바라보면 나 역시 어느날 뒷세대들에게 애증의 빛과 그림자를 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뒤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떠오르는 막막한 세월. 그 세월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우리들의 불우가 자식이라는 불우이자 행복일 것이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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