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제암리' 후손이 만든 기록영화 40년만에 햇빛/ 삼대의 恨이 '그날의 학살' 생생히 되살렸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암리' 후손이 만든 기록영화 40년만에 햇빛/ 삼대의 恨이 '그날의 학살' 생생히 되살렸다

입력
2009.02.27 00:00
0 0

1919년 경기 화성시 제암리(堤岩里) 학살사건으로 희생된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일제의 만행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38년 전 가산을 쏟아 부어 만든 기록영화가 햇볕을 보게 됐다.

24일 화성시에 따르면 제암리 교회에서 희생된 안종후씨의 손자 상호(56)씨가 지난해 12월 기증한 영화 '두렁바위'(제암리의 우리말 표현) 필름의 복원 작업이 최근 마무리돼 3ㆍ1운동 90주년인 다음달 1일 상영된다. 이 필름은 상호씨 부친인 고 안동순(1912년생ㆍ2001년 작고)씨가 71년 제암리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한 것이다.

컬러로 촬영한 1시간 분량의 '두렁바위'는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이후 4월15일 제암리 만행이 일어나기까지 46일간을 시간 순으로 담고 있다. 영화는 3ㆍ1운동 소식을 들은 수원 지역의 기독교와 천도교 지도자들이 제암리에 모여 '구국동지회'를 결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3월31일 발안 장터에서 500여명이 만세 운동을 벌이다가 일제 헌병의 총칼에 희생된 사건과 4월15일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일제 군경이 제암리 주민 23명을 교회에 가두고 방화, 살해하는 장면이 재연된다. 영화는 "3ㆍ1운동 이후 50년이 흘러 이 영화를 만든다"는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막을 내린다.

필름 복원작업을 주도한 김진원(41) 화성시 학예연구사는 "제암리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가 야학을 하는 장면은 픽션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사료 및 구전 내용과 일치한다"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필름 기증을 주선한 향토사학자 이길훈(65)씨도 "학살 현장을 목격한 마지막 생존자 전동녀 할머니가 10년 전 숨지면서 더 이상의 증언이 나오지 않았는데 영화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두렁바위'는 60여명의 무명배우 출연, 다소 어색한 복장 등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땐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 안동순씨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어야 했다.

또 영화 관련 서적을 탐독한 뒤 직접 메가폰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학예연구사는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당시는 컬러 영화가 국내에 도입된 초기여서 제작비가 매우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손들에 따르면 60년대 보일러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안동순씨는 "국가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으니 사재를 털어서라도 후세에 기록물을 남겨야 한다"며 영화 제작에 나섰고, 영화가 완성될 즈음엔 가세가 기울어 상영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경기 광명의 반지하 전셋방에 살며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아들 상호씨는 영화 상영 소식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한을 푼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곤궁하게 살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성시는 다음달 1일 제암리 기념관에서 열리는 3ㆍ1절 기념 행사에서 '두렁바위'를 상영하는 한편, DVD 1,000장을 별도로 제작해 교육용 자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