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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8> 중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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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8> 중국 방문

입력
2009.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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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로, 과거 4천년 간 두 나라 관계는 늘 파란 만장했다.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한때는 우리 선조들이 중국 영토의 일부를 점령한 때도 있었다. 중국의 언어인 한문은 오랜 문화교류로 적지 않은 수가 한국어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중국은 지금도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교역상대다. 경제의 87%를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국만한 교역상대를 찾기 어렵다.

우선 위치가 가깝고 인구는 우리의 30배에 달하는 데다, 전체 인구 상위 3%는 평균 자산이 70억원이 넘는 엄청난 부자다. 이들 3% 부자의 수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와 같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시장인가. 일일생활권 안에 거대한 시장이 있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항상 "중국보다 더 싸게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중국의 짝퉁은 대개 진짜보다 더 좋다" 고 말한다.

하원의원 시절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일이다.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빌딩에서 중국의 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다. 건물은 바깥에서 볼 때는 어마어마했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썰렁했다. 5분쯤 기다리니 10명 정도가 한꺼번에 들어오는데 우리의 국회의장 격인 위원장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를 수행하는 젊은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키가 크고 체격이 당당한 데 비해 인민 위원장은 키가 작은데다 초라한 촌사람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중국의 노동자와 농부를 대표해온 활동가여서 외모가 볼품이 없는 듯 했다.

좌우를 정돈하고 앉으니, 수행원들과 기자들로 꽉 찬 회의실에는 다소 긴장감까지 돌았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대만은 중국의 영토인데 왜 미국은 대만을 두둔하며 군비를 지원하는가, 이는 내정간섭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 질문들은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충분히 브리핑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준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중국을 방문한 목적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계 미 연방 하원의원으로서의 친선방문이기에, 이런 민감한 질문은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은 이미 하나의 중국 정책"을 채택했고 대만은 중국의 영토라는 입장인데 뭐가 문제냐?" 고 반문하고 얼른 대화를 돌렸다.

방안을 둘러보니 한문으로 쓴 족자가 걸려있었는데 "天下太平" (천하태평) 이라고 써있었다. 그래서 나도 한문을 읽을 줄 안다고 말하고 '천하태평'을 영어로 번역했더니,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기자들까지 환호하면서 손뼉을 쳤다. 중국 역사상 한문을 읽을 줄 아는 미국 국회의원은 처음 만났다는 얘기다. 한문을 어디서 배웠냐는 질문에 어렸을 적 한국에서 배웠고 천자문쯤은 이미 통독했다고 과장해서 얘기했더니 그 반응이 너무도 좋았다.

나는 삼국지 연속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스토리라고 말했더니 그 많은 영웅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기에 종이에 쓸 테니 먹과 붓을 가져오라고 했다. 준비된 듯 바로 먹과 붓을 가져왔다. 나는 팔 소매를 거둬 '조자룡' 이라고 한문으로 적었다. 다들 일어나 박수 치며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중국 측은 나의 한문 실력을 과대평가했는지 이튿날 아침에 유명한 한자박물관 방문을 주선했다. 그래서 다른 흥미로운 관광을 취소하고 대신 박물관에 도착했다. 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관장 실에 차려놓은 차와 과자를 몇 점 먹고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 병풍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관장이 이 병풍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데 자그마치 한 시간이 걸린 기분이다. 지루하지만 참고 열심히 듣는 척했다. 관장이 중국말로 설명할 땐 그를 바라보고, 다음엔 통역관의 서투른 영어를 들어가며 설명을 듣자니 시간이 두 배로 더 들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돌로 지은 5층의 아름다운 빌딩이었다. 이 5층이 모두 다 서예로 가득 차 있는 줄은 몰랐다. 관장 실을 나서 2층에 도착하니 역시 서예로 가득했다. 3층에 도착했다. 이제는 더 이상 지루해서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그다지 서예에 대해서 잘 아는 바도 없고 흥미도 없는데 '조자룡' 석 자 때문에 마치 서예의 일가견이 있는 듯 잘못 알려져 다른 관광 일정을 바꿔가며 이리 온 것이다. 결국 나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지만 중국의 무궁무진한 문화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중국 방문 중 '조자룡' 글씨 하나로 나는 중국인들의 관심을 샀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지만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내 지역구안의 대만 계 중국인들에게는 적이 되다시피 했다. 그 당시 나는 대만 독립 문제가 대만에서 이처럼 큰 이슈가 돼 있는지는 잘 몰랐고, 내 지역구의 중국인은 거의 전부가 대만계란 걸 미처 생각하?못했다.

결국 대만 계 중국인들의 인심을 몽땅 잃었고 이들은 나의 낙선 운동에 앞장서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지금은 친 중국계가 대만 선거에서 완승해 대만 독립 주장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지만, 과거 15년 동안은 매우 첨예한 쟁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 일로 대만 계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은 사고도 있었다.

두 번째 중국 여행은 당시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과 약 20명의 의회 보좌관들과 함께 였다. 장쩌민과의 만남에서 받은 인상은 그가 카리스마가 넘치는 타고난 지도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만찬에서는 처음에 샐러드에 이어 수프가 나왔다.

수프를 먹기 시작하는데 별안간 옆에 앉아있던 백인 여자 보좌관들이 소리를 질렀다. 모두 놀라 바라보니 이 수프는 병아리 배 안에 양념을 넣고 끓인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구경하지 못한 요리였다. 젊은 미국 여자들이 포크로 집어보니 금방 나온듯한 어린 병아리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통째로 눈을 감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 것이다.

나는 병아리를 젓가락으로 들고는 눈을 감고 통째로 입안에 넣었다. 상상 외로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홍콩에서 여러 가지 희귀한 음식들을 먹어보았기 때문에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아마도 이들에겐 기절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주 요리는 돼지고기 같은데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자세히 물어보는 게 실례란 말을 듣고 수행원들에게도 "묻지 마"를 강조했다.

중국식당을 갈 때는 결코 부엌을 통해서 지나가지 말라는 충고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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