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출렁거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씨티그룹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취득한 520억달러 규모 우선주 가운데 450억달러 어치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대신 지분 40%를 확보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AIG 역시 씨티그룹처럼 정부 보유 우선주 중 400억달러 규모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것을 당국과 협의 중이다. AIG는 지난해 4분기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 분기 손실인 600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보았다고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씨티그룹, AIG 등 금융 기업들이 정부 소유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우선주는 일정 비율이 부채로, 보통주는 자본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비율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반면 정부 지분이 높아져 정부의 경영 간섭이 커지고 국유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씨티그룹이 국유화 논란을 피하기 위해 민간분야에서 같은 규모의 증자를 추진키로 하자 발행주식 증가에 따른 기존 주주의 지분율 하락을 우려, 금융주를 중심으로 급락세가 연출되면서 미국 증시가 12년 전 수준으로 내려앉고 전세계 증시가 동반 급락한 것이다.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백악관, 재무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 등은 23일 잇따라 성명을 내고 금융기관의 '민간경영 시스템 유지'를 강조하면서 국유화설을 거듭 부인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형 은행의 자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해 지면서 자립 기반을 갖출 때까지라도 구제금융 대상 은행을 국유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대표적인 국유화론자이며 금융 자율화의 전도사였던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등도 최근 이 대열에 합류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미국 대형은행의 잔존가치가, 필요한 구제금융 규모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국유화 논란은 무의미한 것"이라며 "미국 은행은 이미 민간기업이 아니라 부실투성이 사회주의식 기업"이라고 꼬집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가 회생되는 최소한의 기간동안 은행을 국유화해야 한다"며 "민ㆍ관 합동 형태의 어정쩡한 개입방식은 자칫 기존 은행 대주주가 이익을 챙기고 손실은 국민 혈세로 충당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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