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월 말 국회제출 예정으로 작업 중인 추경예산 규모가 천정부지로 커지는 분위기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실업대란이 사회불안 요인으로 등장한 현실을 타개할 유일한 출구는 재정지출 확대뿐이라는 공감대도 넓어지고 있다. 더구나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코리아 학술대회 기조연설을 통해 "글로벌 실물경제 위축과 대량실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공조하고 합심해 동시에 재정확대 정책을 펴는 '글로벌 딜'을 추진하자"고 제안하며 4월 런던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이 사안을 공론화할 뜻을 내비쳤다.
이를 받아 한나라당 안경률 사무총장은 당초 20조원 선에서 논의되던 추경 규모를 30조원 이상으로 늘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서민생활 붕괴 등 시스템이 무너지는 판에 빚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추경 자체부터 반대했을 야당도 정확한 용도만 제시되면 규모는 충분히 논의하겠다는 입장이고, 학계 일부도 추경 규모를 아예 50조원까지 확대해야 위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정부는 올 한 해에만 60조원 대의 빚을 끌어와야 된다.
통상적 경제 처방으로는 작금의 경제 위기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국내외적으로 드러난 만큼 추경 역시 과감하게 편성하는 것이 오히려 현재와 미래의 비용을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매사 그렇듯이 여기에도 규율과 절제의 잣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뭘 앞뒤를 따지느냐는 방만하고 무책임한 주장이 날뛸 우려가 큰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어제 "일자리 창출과 내수진작에 실질적 효과가 있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파격적인 (추경)예산을 편성하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며 "규모가 얼마냐보다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처님 말씀 같은 말이다. 하지만 예산 편성과 심의에 온갖 이해와 유혹을 개입시켰던 전례로 미뤄 이 말은 믿기 어렵다. 소위 '슈퍼 추경'이 '슈퍼 채무'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과 지출내역을 소상히 밝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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