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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노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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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노비의 날

입력
2009.02.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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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이월 초하루다. 봄이 오고 있다. '동국세시기'를 들춰보니 이월에도 송편을 빚었다. 손바닥만한 것에서 계란만한 것까지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팥 소를 넣고 솔잎을 켜켜이 깔아 쪄낸다.

노비들에게 나이 수대로 송편을 먹였다. 이 날을 노비의 날이라고 했다. 이 날로부터 농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노비들을 대접하는 의미였다.

오랜만에 뵌 어른이 대놓고는 못 묻고 어머니에게 돌려 물었다. "올해 몇 살이누?" 고개를 갸우뚱하던 어머니가 묻는다. "니가 올해 몇 살이지?" 별 생각 없이 입에 올린 그 숫자가 제법 묵직하다.

어머니도 놀라고 내 나이의 곱절도 더 드신 어른도 놀라 "하이고 세상에. 그러니 우리가 안 늙고 배겨나겠니" 하신다. 오늘은 노비의 날, 예전 같았으면 마흔 개가 넘는 송편을 받아들었을 것이다.

짧았던 평균수명을 감안한다면 연장자 중에서도 상연장자 축에 끼었을 나이이다. 송편을 많이 받아 신이 나기보단 처량 맞고 면구스러웠을 것 같다. 신물이 올라오도록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송편의 갯수.

나이가 들수록 말수는 줄이고 지갑은 열어라,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넉넉한 송편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심 한 번 쓸 수 있는 날이기도 했을 것이다. 송편은 나눌 수 있지만 나이는 나눌 수도 없다. 손바닥만한 송편을 한 입에 넣은 듯 목이 막힌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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